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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이 글을 읽고 나니 미처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축구, 배구, 배드민턴, 농구, 핸드볼 같은 체육시간에 했던 운동은 분명 이 전보다 종목과 친해진 기분이 들고, 좋아하는 구석이 생겼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허공에 대고 바람 역방향으로 배드민턴 공을 치면 배드민턴 공이 다시 내게 날아왔다. 그걸 받아치면서 혼자 배드민턴 치는 걸 좋아했다. 지금에 와서는 혼자라고 썼지만 당시엔 웃기게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상대는 바람, 하늘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여고생적 모먼트. 배드민턴 치는 체육 시간에 바람이 쎄면 기분이 벌써 짜릿했다. 친구가 같이 배드민턴 칠래 해두, 야 휴양대 가서 수다나 떨자 해두 바람에 대고 배드민턴을 쳤다. 정말 사랑하던 순간. 배구나 농구는 수업이 경기까지 이어진 적은 없지만 체육 쌤이 몇 가지 규칙과 동작을 알려주고 연습하라고 애들 버려두는 시간이 좋았다. 혼자 이리저리 연구하면서 해볼 수 있으니까. 배구공 토스하는 동작을 하려면 팔을 쫙 펴고 모아 맞잡은 두 손 엄지 부분을 평평하게 해서 배구공을 잘 닿게 해 튕겨내야 한다. 체육 시간에 해 본 걸로도 배구공이 손에 잘 맞을 때 나는 공소리 탕-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연습 중엔 그 소리가 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이따금 배구 경기를 보면 선수들 손에 닿는 공의 촉감, 토스할 때 엄지 손가락들이 받을 압이 느껴진다. 몇 가지 요소 정도는 나와도 친하던 시절이 있던 것이라는 듯, 여행으로 가봤던 이국의 동네가 티비에 나와서 회상에 빠져버린 것처럼 배구 중계에서 운동장 흙냄새, 흙냄새랑 섞여 나던 배구공 낡은 천 냄새를 맡는다. 바닥에 공을 튀겨가며 걷다가 멈춰 서서 슛을 쏘는 농구의 연결 동작도 좋아했다. 좀 간지가 난다고 생각했던 듯. 농구공 고무 냄새, 특유의 팅팅 농구 공소리가 퍼지는 강당에서 공 튀기기와 슛 연습을 열심히 했다. 아마 고2 2학기였던 것 같다. 쌤은 수능 얼마 안 남았으니 연습 쫌만 하고 쉴 사람들은 쉬라고 했는데, 나랑 몇 안 되는 애들은 열심히 연습했다. 당시엔 연습하면서도 나 왜 열심히 하지? 내가 좀 성실한 타입인가?라고 언뜻 생각하고 말았지만 분명히 좋아했던 것 같다, 공을 만지고 동작하는 일을. 연습을 애들보다 많이 해서 슛 쏘는 걸로 본 실기 점수는 잘 맞았는데, 자세가 너무 웃기다며(몸치의 숙명...) 쌤이 도저히 자세 점수 A+은 줄 수 없다고 인정? 하셔서 네.. 인정... 했던 기억도 재밌고, 핸드볼을 간단하게 익히고서 쌤이 해보자 해서 했던 경기도 재밌었다.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공을 강하게 쥐고 격하게 뛰는 그만큼 흐름이 빠른 경기를 살면서 처음 해본 듯. 역시 짜릿함이 있었다. 핸드볼은 경기 규칙이 쉬워서 이걸 배우던 학년은 체육 대회 때 핸드볼을 했는데, 우리 반이 그 해에 우승을 했다. 그때 나도 뛰었고, 큰 활약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숨찬 가슴을 안고 애들과 부둥켜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이 자주 했던 피구나 발야구는 한 번도 좋아지지 않았다. 좋아한 일말의 구석도 없다. 이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저 글을 읽고 이제야 비로소 뭔가를 알 것 같았다. 피구나 발야구 경기에서 나는 구멍이었고, 누구보다도 빨리 아웃을 당했다. 경기에 도움이 안 되는 선수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내게 닿던 공에서 두려움을 받았다. 이번엔 잘 피해야 할 텐데, 잘 차야 할 텐데 라고 생각했고 번번이 실패했고 쭈글 해졌다. 그런 경험만 하다가 초5 4교시 때 축구를 했는데, 쌤이 여자애들 남자애들 섞어서 편을 짜줬다. 공을 따라 달리고, 내게 오는 공을 근처 친구에게 패스해주는 게 무척 재밌었다. 골도 한 번 넣어 봤던 것 같다. 나한테 공이 몇 번 오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데 재밌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축구 더 하다 들어갈 사람 남아라~ 했을 때 남았고, 수업 끝나고 축구하다 갈 사람 남아라~ 할 때도 남았다. 낄 수 있는 한 꼈다. 그치만 초6 때는 애들이 안 껴줬고 나도 내 하찮은 실력을 알았으므로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며 공과 멀어졌지만 간간히 체육시간에 수업으로라도 공이라는 걸 만나면 너무 좋아 잔뜩 만지다가 헤어졌다. 체육 쌤이 수업 끝날 때 창고에 공 넣어놓고 들어가라 그러면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흩뿌려진 공을 주워 담고 들어 가던 것도 나였는데 나는 내가 심성이 착해서 그러고 있는 줄 알았지, 지금 생각해보니 공을 만지는 게 마냥 좋았는지도.
피구나 발야구가 어린이 세계에나 있고 왜 올림픽 종목에는 없는지 이유를 지어보자면, 두려움을 전해서, 낙오되기는 쉽고 승자는 소수 뿐인 이 종목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어서 아닐까.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이 썩을 사회가 피구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사랑 가능??? 내게 다른 공놀이가 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20210226 정월 대보름이면 달이 다섯 군데 뜨는 강릉 (0) | 2021.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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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2 이동 (0) | 2021.02.23 |
20210207 종합 제리 (0) | 2021.02.07 |
20210119 싱숭생숭 (0) | 2021.01.20 |
20210105 그리지 못했지만 축하해! (0) | 2021.01.05 |
블로그에 글 쓰고 싶다 쓰고 싶다 하면서 10일을 보낸 듯... 그롷게 지내다 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호주머니에 한참 굴러다녀 진득해진 젤리마냥 할 말은 녹아가고 끈적이는 단내만 남아 마음을 괴롭힌다. 내일부터 이틀 휴일. 정오에 일어나 햇빛 쬐면서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등의 모양새로 여유롭게 글 쓰고 싶은데, 지금 연태구냥을 한 병 넘게 마신 상태라 대실패 예정이네...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내 신체 회복력 님...
20210222 이동 (0) | 2021.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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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9 공놀이 (0) | 2021.02.09 |
20210119 싱숭생숭 (0) | 2021.01.20 |
20210105 그리지 못했지만 축하해! (0) | 2021.01.05 |
20201218 쪼아욧 !! (0) | 2020.12.19 |
(선물 받은) 일일 다이어리를 제대로 쓰게 되었다! (와~~~~) 그래서 (오래전에 선물 받은) 연필도 드디어 깎았다. (와아~~~~~) 이 다이어리의 하루 치 한 장에다 계획도 쓰고 일기도 쓰고 할 참이다. 계획을 적은 부분은 글이 아니고, 또 계획이라는 건 다시 볼 때 어쩐지 지끈거리니까 눈에 거슬리지 않게 적히면 좋겠는데 색이 예쁜 펜으로 쓸까나 어쩌나 하다가 색이 비교적 흐린 연필로 적기로 했다. 그렇게 써보니 좋은 결정이었다는 확신이 든ㄷㅏ. 일단 연필 색은 기분이 좋기 때문에 적힌 게 계획이든 망친 그림이든 그리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마음에 안 들면 지울 수 있다는 여지가 시각에도 여유를 준다. 어느 도구로 그리냐 유화로 그리냐 오일 파스텔로 그리냐에 따라 그림이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것은 오래전에 이해한 일인데, 글도 마찬가지일 거란 사실을 이제야 이해한 기분이다. 재밌다.
쓰는 곳을 통일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던 건지(정리 못 하는 자의 정리 조급 증세) 오래 묵힌 일기는 블로그에 하고... 순간순간 일기는 트위터에 하고... 일기의 용도는 이런 곳들에 다 했는데 다이어리에 또 쓸 필요가 있을까나~~ 했는데 써보니 다른 글이 나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다가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려 부연설명을 넣었는데, 트위터에는 블로그에는 한 번도 하지 않던 일이다. 연습장에 그리냐 오일 파스텔 전용 종이에 그리냐에도 그림이 달라지는디 글을 어디에 쓰느냐도 크게 다른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차이는 해보고 나서야 느꼈고, 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거시였다.
비록 연필, 종이 같은 것에서지만 이런 것에서 연달아 깨닫고 나니 무엇을 어디에 고정하는 일이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보였다. 뭘 새로 깨닫고 나면 이전에 내가 믿어 왔던 것들이 시시하게 보인다지만, 무엇을 어디에서 하냐에 따라 서로 이만큼이나 다른걸? 고정이 꼭 필요해? 어딘가 오래 꽂혔던 핀이 스스로 구멍을 빠져나와 달음박질하고, 핀이 고정해왔던 것들이 제자리를 벗어나자 탈주하는 걸 지켜보는 해방감이 들었다. 고정된 정물을 분해하고 분해하고 분해해서 아주 작은 단위인 원자 상태가 되면 이 원자를 저 원자에도 붙여보고 저 원자에도 붙여보면서 새로운 분자가, 새로운 정물이 생겨나는 게 보고 싶어졌지, 박자를 정확하게 맞춰 연주하는 일은, 네모 칸에 바른 글씨를 적어 넣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 피카소의 그림이 이전보다 이해가 가고, 혁명에 더 당위가 부여됐다.
한순간에 뭘 가득 깨닫는 강렬함은 이렇게 극단적인 것이다. 눈이 부시면 빛만 보일 뿐, 주변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를 경험해 온 어른이므로, 능수능란하게 이것을 기억해낸다. 자음과 모음이 너무 다른 위치에 있어버리면 제 의미를 내는 글자가 되지 않는다는 걸, 음계를 적절히 벗어난 연주는 자유로운 연주가 되지만, 아예 벗어나버리면 합주가 불가능하다는 걸. 사랑이라던가, 거주지, 일상의 루틴 같은 걸 이 깨달음에 대입하고 실행해보면 너무나 재밌겠지만, 그러지 않고 때때로 적절하게 길을 잃어보는 일에 망설이지 말자는 정도에서 이 즐겁고도 짧은 유희를 마쳤다.
엊그제는 눈이 아주 많이 내렸다. 그랬다는 사실을 SNS에서 읽었다. 사람들이 올린 눈 사진과 영상도 구경했다. 밖에 다녀온 ㄱㅁㅌ가 와 밖에 눈 진짜 많이 왔어요 하는 말에서도 눈을 알았다. 그래서 눈이 아주 많이 왔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밤중에 베이킹소다를 꺼내러 베란다를 열었을 때 창밖으로 쌓인 하얀 눈을 봤고, 멈칫했다. 그제야 무엇을 언제 제대로 알게 되는지를 새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무척 기뻤다. 내가 지닌 힘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문장을 얻었기 때문에. 내가 지녔으나 힘이라는 무언의 상태인 것이 비로소 정확한 형태가 되었다. 글은 정말 훌륭해. 글이 어디에 있냐면,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실'과 같은 곳에 놓여있다. 글은 알은체하는 곳 말고, 아는 곳에서 글이 된다. 게다가 글은 글이 되고 나서도 '존재'를 자꾸 다른 말로 새롭게 쓴다.
+ 오늘의 노래
이미 수백만 번 불려진 유명한 곡을 연주하는 일도 다른 연주자가, 다른 악기로, 다른 시대에 연주하면 음표가 달음박질해 ~~~ 게다가 베이스 포지션으로 여겨지는 콘트라베이스와 하프만으로 합주 된 곡이라니. 그동안 조연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배우가 주연이 된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너무 새로운 구성이고 이 사실들이 재밌어서 어깨춤을 춘다.
Dezron Douglas & Brandee Younger, You Make Me Feel Brand New
20210209 공놀이 (0) | 2021.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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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7 종합 제리 (0) | 2021.02.07 |
20210105 그리지 못했지만 축하해! (0) | 2021.01.05 |
20201218 쪼아욧 !! (0) | 2020.12.19 |
20201217 읽어야 하는데... (0) | 2020.12.18 |
사랑 초기에 나는 널 무지 그리고 싶었다. 네 요소요소를 선으로 따라가며 하얀 종이에 흑심 가루를 검게 묻히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네 온전한 형태를 훼손하는 일이 될까 봐, 어디 하나 흠집 낼까 봐 아까웠다. 지금 상태로도 아름다운데 내가 개입할 곳이 어디 있다고. 나는 그저 세상에 놓인 네 그대로를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너무 영글어 보이는 곳은 못 참고 맛보듯 조심조심 핥으며 보냈다.
그림으로 그리려면 정말 오래, 구석구석을 깊숙하게 봐야 한다. 그리지 않더라도 이미 그렇게 샅샅이 보고 있었지만 굳이 그리고 싶었던 건, 아직 안 본 곳이 행여 남아 있을까 봐서였다. 그건 싫었다. 네가 너무 아까운데... 그러면서도 모든 곳을 차지하고 싶었다. 간밤 소복하게 눈 쌓인 풍경을 그대로 지키고 싶으면서도, 밟는다면 내가 제일 먼저 밟고 다니고 싶었다. 디지털 세상 최소 단위라는 1픽셀씩을 옮겨 찍는 시선으로 네 표면을 다 건드려서 어디 하나 1픽셀 나간 곳 없이 온전한 형태를 구현해내듯 그렇게 모조리 내 눈으로 널 야금야금 깨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널 지금까지도 그리지 못했다. 네게 흠집을 내가 내놓고 내 가슴이 너무 아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던 시기도 사는 게 으레 그런 순서인 것처럼 지나갔다. 널 훼손하는 게 점점 쉬워졌고, 가슴은 덜 아파왔다. 어느 땐 내 가슴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부러도 널 훼손했다. 그어도 자르지 못하는 문구용 칼날처럼 굉장하다는 사랑도, 미세하고 예리하던 사랑도, 반복되니 무뎌져 갔다.
결국 내가 널 이렇게 훼손할 건데. 예전에 아깝다고 그리지 않았던 게 바보 같다. 널 그렸다면, 아주 작은 단위씩 정확하게 옮겨 찍다가도 있잖아, 이제 그려 넣을 지점은 유독 더 사랑하니까 좀 전에 그은 선과 다른 표정의 선을 그어 넣을 거야. 떨리던 내 목소리, 네 상기된 뺨, 빨개진 귀, 자꾸 웃던 도톰한 아랫입술, 유난히 소리를 내며 넘어가 창피하던 내 침, 긴장하느라 떨어진 식욕 같은 선을 그려 넣을 거야. 그러는 사이 너를 아끼며 보던 나도 담겼을 거야. 그게 내가 네 형태에 입힐 내 사랑 선이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밤이 됐을 때 네게 지금 몇 시야? 물었고 네가 11시 35분. 조금 이따가 지금은? 물었고 네가 11시 43 분하고 대답했다. 그러다 조금 지나 네가 내게 고마워~ 그래서 나는 앗!! 생일 축하해!! 그랬고. 네가 또 고마워~ 그랬다. 한발 늦은 나도 웃고, 뒤죽박죽 생일 축하를 만든 너도 웃고, 같이 한참을 웃었다. 오래된 사랑은 그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둥근 선으로 굵게 휙휙 그려낼 수 있는, 무뎌지고 덜 아파오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 오늘의 노래
내 빈곳 없는 마음 앞에 모두 나를 외면한 외면한 그때도 그대만은 내 옆에 서 있었죠 함께 노래 부르며 함께.
내 잘못을 보았을 때도 기다려준 말없던 날 향한 믿음들 그럴 때마다 난 볼 수 있었죠 내가 가야 할 옳은 길을.
조규찬, 우리 한땐
https://youtu.be/2 m 25 CSBGW5 w
20210207 종합 제리 (0) | 2021.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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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싱숭생숭 (0) | 2021.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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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7 읽어야 하는데... (0) | 2020.12.18 |
20201201 (0) | 2020.12.01 |
웃긴 짜식ㅋㅋㅋㅋ
20210119 싱숭생숭 (0) | 2021.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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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5 그리지 못했지만 축하해! (0) | 2021.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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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꿈 (0) | 2020.11.25 |
마감한 가게에 앉아 추위에 떨면서 내가 태어난 해에 출간된 책을 읽고 있다. 이번 스터디 모임 책이다. 역시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붙들고 내 집중력은 왜 이 모양인가 한탄을 하며 딴짓을 하다 책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블로그까지 들어왔다. 모임까지 2일 남았는데 젠장 다 망해라.
뭔지도 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읽고, 모임 날이 오면 몇 시간 잠 못 자고 일어나 기차 타고 서울까지 가서 발제 듣고, 얘기 나누고, 몇 달에 한 번은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내 몫의 발제를 하는 스터디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 참석할 당시 예언가가 당신은 이 모임을 10년 넘게 될 것이라고 했다면 나는 미친 소리잖아 라고 안 믿거나, 조금이라도 믿어졌으면 도망쳤을 거 같은데. 재밌어서 그다음 모임에도 가고 가고 하다 보니 10년이 지났다. 진짜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재밌으면 계속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게 나쁜 짓이라도 말이다. 왜일까. 재미가 뭐길래. 내 경우는 읽은 책을 책장에 꽂아 놓으면 폼이 나는 것을 재밌어하게 된 것이고 그것도 웃기다. 책장에 내가 고르지도 않은 책이 잔뜩 꽂혀있다. 그런 점이 한없이 웃기고(책장 보면서 웃는다) 맘에 든다. 뭔지도 모르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따라가는 것. 이 과정에서 내가 결정한 건 읽고 나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겠다는 행위 한 가지다. 그러고 나면 이 소득 없는 여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 어려운 책에 대해 자신이 느낀 것, 궁금했던 것에 대해 소상히 말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된다. 엇나간 이야기도, 책과 관련 없는 얘기지만 사람들 만나면 하고 싶었던 얘기도 섞여 있다. 주제를 꿰뚫는(그런 순간 좀 아름답지 않아?) 얘기를 듣게 될 땐 소름이 돋아 어디에 적어놓기라도 하면서 듣는다. 왜 이 모임에 오게 되냐고 물어보면 사람이 만나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 대답을 들었을 때 한참 웃었다. 내 마음을 대신 말하는 사람 말을 들으면 한참 웃게 된다. 내 마음을 대신 말하는 노래를 한참 듣게 되는 것처럼. 의미를 두지 않고 목적을 두지 않고 실익을 따지지 않고 학위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강제성 같은 건 전혀 없는데도 사람이 만나고 싶어서 어려운 책을 끙끙거리며 끝까지 읽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아서 나도 10년을 넘게 어떤 책인지도 모르는 책 앞에 앉아 끙끙대고 있다. 그러다가 정신 못 차리게 나를 흔들어대는 문장을 만나기도 하고, 내 신념이 변경되기도 한다. 내 경우 신념이 여러 번 변경되었는데, 여러 번이나 변경되는 게 신념일 수 있냐고 빈정을 살 순 있지만, 누구나의 신념이 그러하듯 내가 지녔던 것도 웬만한 걸로는 깨부술 수 없는 단단한 성질의 신념이었다. 그런 신념이 여러 번 변경되는 경험은 진짜 신난다고!!! 그러니까 여러분, 우선 신중하게 신념을 지니고 그것을 기꺼이 여러 번 변경해!!! 20대 중반의 나는 지루하리만큼 모든 걸 선과 악으로 구분하길 좋아했고, 담배 같은 걸 악으로 놓을 만큼 하찮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웬만한 욕망을 선과 악으로 재단하지 않는 걸 배웠다.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던 때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었을 때이고, 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긍정하는 사람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욜라탱고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만들 수 없던 사람이 만드는 사람이 되는 변경, 지금 생각해도 신난다. 다시 찾아올까 그런 강렬한 변화가.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만나면서 신념이 깨부수어지는 순간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모임이 끝나면 반드시 ‘맛있는’ 저녁 먹을 수 있는 곳에 가서 소주를 외치며(중국집에선 연태구냥을 외치며) 뒤풀이를 하는 사람들이라 지금 온라인 모임 방식은 굉장히 굉장하게 대단히 대단하게 형편없다.... 사람은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깝게 앉아서 술잔을 부딪치고 술잔 속 술이 출렁이고 웃느라 몸이 흔들리고 그래야 서로에게 엉킬 수 있단 말이다 그렇게 엉겨 붙는 게 생겨야 기억할만한 지점이 시간 위에 핀이 생기는 것이란다 이 망할 코로나야...... (코로나만 끝나면 대전에서 모임을 만들고 싶은데, 무슨 모임을 만들지 모르겠지만 그 모임은 반드시 뒤풀이가 존재할 것이다.... 그것만은 정해져 있다. 알겠냐 써글 코로나야)
20210105 그리지 못했지만 축하해! (0) | 2021.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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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8 쪼아욧 !! (0) | 2020.12.19 |
20201201 (0) | 2020.12.01 |
20201125 꿈 (0) | 2020.11.25 |
20201124 (0) | 2020.11.25 |
(여기에 종종 뭘 쓰긴 하지만....) 읽는 쪽이 아찔하고 깊숙하게 취한다. 그러게 나는 글을 써서 누굴 취하게 만들 생각은 없고, 글을 읽고서 잔뜩 취해버리고 바보처럼 허우적거리고 싶다. 노래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노래 씨발 너무 좋아!!! 하면서 계속 계속 듣고 싶다. 잔뜩 사랑해버리고 싶다. 나라는 건 지워버리고서. 나라는 게 지워지게 짓눌려 납작하게 될만큼 허겁지겁 다른 것들을 잔뜩 집어 넣고서. 그러나 나를 지워낼 것이 지독하게 들러붙는 시커먼 기름때 같은게 아니라 스파크 일으키고 뜨겁게 반짝이다 타오르는 것이길,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길 바라는 마음은 뭔지. 하여간 찰랑이는 캐롤이 흐르는 눈부시게 화려하고 하얀 크리스마스 풍경 한 쪽 구석에 구겨져 버려진 휴지처럼 가려지는데 무리없이 사라지고 싶다.
20201218 쪼아욧 !! (0) | 2020.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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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7 읽어야 하는데... (0) | 2020.12.18 |
20201125 꿈 (0) | 2020.11.25 |
20201124 (0) | 2020.11.25 |
20201123 터널 (0) | 2020.11.25 |
여러 개 화분에 여러 종류 화초를 키우는데, 이 덩굴과 녀석은 다른 친구들보다 신경이 쓰인다. 처음엔 거침없이 무럭무럭 자라서 무난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계절이 바뀌는 중에 실내로 옮겨놓고 이 전보다 좀 소홀했더니 다른 화초에 비해 싫은 티를 낸다. 노란 잎을 매일 하나씩 만들어 떨구고, 새로 티우려 준비하던 잎을 닫고 생장을 멈췄다. 얘가 왜 이러지, 신경을 많이 써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올 기색이 없다. 그 사이에 다른 화초들은 새로운 실내 환경에 적응해서 새 잎을 보이기도 하고, 꽃을 보이기도 하고, 시들었다가도 물을 먹으면 금세 쌩쌩해져 돌아오는데 이 녀석은 여전히 싫은지 노란 잎을 떨구기만 한다... 이제 잎도 얼마 안 남았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얘가 좋아할 만한 환경을 꾸준히 유지해나가는 것.
그러던 중 오늘 보니 새 잎을 여러 개 내놓았다. 와. 이제서야.... 그치만 얘가 싫은 티 내는 게 싫지 않고 마음이 어렵지 않고 예쁘다. 자꾸 내가 더 잘해줄게. 하게 된다.
20211008 아단소니 잎에 난 구멍으로 다른 잎이 통과해서 자란 건에 관하여 (2) | 2021.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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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8 레몬나무 아니면 자몽나무일 레몽이 (1) | 2021.09.28 |
20210920 립살리스가 내는 새순 (2) | 2021.09.21 |
20210920 내가 찾아낸 다이아몬드 프로스트와 Diamond Frost 리본풀(한기죽) 의 연결고리 (2) | 2021.09.20 |
20210901 두유 리멤버 트웬티 퍼스트 나이트 오브 셉템버 (2) | 2021.09.03 |
저 앞에 잔잔하게 파도가 치고, 오후 햇빛이 모래알 위에 부서져 내려앉아 있었다. 그 모래 위에 네가 왼팔을 배고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나는 네 머리맡에 앉아서 저 멀리 파도와 햇빛과 모래 알갱이와 네 헝클어진 머리칼과 네 손을 보았다. 네 손가락의 구부러진 곡선 위에 내 손가락을 얹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거라 떨려 바로 떼려다가 떼기 싫어서 되려 꼭 쥐었다. 너도 내 손가락을 꼭 쥐었다. 무슨 뜻일까. 다섯 번 정도 꼭 쥐다가 손을 떼고 좀 걸었다 온다고 하고 훌훌 일어났다.
걷고 있는데, 그 사이에 네가 어딘가에 적은 글이 내 눈에 보였다.(꿈의 장점) 글엔 내 마음을 알 것 같을 때 그게 아닌 듯, 관심이 없다는 듯 내가 휙 가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모르겠다고 써있었다. 읽으면서 나도 네가 그런데 라고 생각했다.
해가 지려고 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네게 가서 우리 이 마을 오래된 학교를 찾아서 도서관에 가보지 않을래? 하고 말했다. 네가 기분좋게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땐 조금 있으면 사라질 짙노란 햇빛이 창문살을 피해 나무 바닥 위로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 너는 그 위에 엎드려 누웠다. 네 옆엔 네가 책장을 보다가 휙 휙 빼든 책이 여러 권 놓여 있었다. 우리 너머 책장 앞에 도서관 관리 쌤이 바닥에 앉아 등을 보이고 책을 정리하고 계셨는데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엑스트라 같이 보였다. 나는 네 앞에 앉아 네가 빼든 책을 봤다. 너는 뭘 읽고 싶던 걸까. 책이 궁금한 게 아니고 책에서 니가 보려고 했던 걸 읽고 싶었다. 하지만 봐도 잘 모르겠고 나에겐 관심 없고 책에 관심 있는 너를 보다가 책을 잡고 있던 네 손을 잡고 너를 봤다.
그러고 꿈에서 깼다. 꿈이 뭐 이러지..... 너무 설레서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짙노랗던 햇빛 톤, 슬로우 모션으로 일렁이며 햇빛에 부딪쳐가던 사물들이(물 위에 윤슬, 모래알, 책장, 나무 바닥) 빛에 노랗게 덮인 네가 너무 좋아서 뭐로든 어떻게든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거긴 꿈이니까 헝클고 싶은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네 머리칼을 바라만 보는 거 말고, 들킬까 봐 거리 두느라 머리맡에 조심히 앉는 거 말고, 말고 네 옆에 아무렇게나 뎅구르르 누워서 네가 보는 책을 같이 보고 싶다 궁금해하지만 말고 어느 대목이 좋았어? 하고 묻고 싶다 그러다가 손을 뻗어 책만 보는 네 눈을 시샘이 난다는 듯 내게 돌리고 온종일 네 생각을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공기 중이 울리게 소리를 내서 말하고 내리쬐는 햇빛처럼 내보이고 싶다 온종일 네가 좋다고 밤이 오면 마음이 터질 것 같아 어쩔 줄 모르다가 울었다고 나 온통 너라고 너는 내가 그러냐고
+ 오늘의 노래
어쩌다 잠이 깨어서 이렇게 그리워하나
이정선(신촌블루스), 한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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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얘기를 쓰고 싶은데, 이름을 쓰고 나면 더 이상 못 쓰는 마음이 돼서 아 아직은 쓸 수 없구나. 알게 된다. 물리적인 고통이 가슴을 찌른다. 덜 아플 때 쉬엄쉬엄 써봐야겠다. 써서라도 뭐라도 더 붙들고 싶은 건가... 근데 빨리 쓰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다. 내 기억은 못 믿으니까 적어야 해.
노아가 없어서 불행하다. 안고 그 녀석의 체중 따뜻한 체온 보드라운 털 감촉, 코 박고 맡는 고소한 냄새 맡고 느끼고 싶다... 그래야만 채워지던 안도감이 있는데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게 너무 괴로워 미치겠다. 노아는 인간의 말없이도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선명하게 전하던 영특하고 다정한 아이였다. 매일 눈을 마주하며 그 사랑을 전해 받았는데 매일 반복하던 소중한 패턴이 왕창 빈다.
그럴 때 바로 떠올리려고 애쓰는 말들에 살아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사랑은 끝이 없다는 말, 세상에 재회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 같은 벅찬 말들과 위로의 말들이 내 안에서 나를 자꾸자꾸 살게 만든다. 정말 이상하고 뜨거운 경험이다. 슬프고 괴로울 때 이런 뜨거움을 품게 된다고 하니까 ㅎㄴ님이 거저 주는 거 없어 사는 게 야속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래ㅠㅠ 받은 위로의 말들을 언제 다 모아봐야지.
노아 없다고 그동안 못 했던 향기 나는 거 뿌리기도 하고, 손에 올려서 주던 영양제 준 다음에 발라야 했던 로션도 순서 고려 안 하고 그냥 막 바르고, 외출 할 때 하던 많은 챙김 동작들을 하지 않고, 좁은 집이 노아 물품 치우니까 조금 넓어지고, 털 때문에 못 입던 검은색 옷도 사고, ㄱㅁㅌ전담 달라고 해서 방에서 피우는 안 하던 짓도 하고... 그런데 이런 거 안 하고 노아가 있었으면.
+ 오늘의 노래
이 노래 들으면, 자꾸 저기에 노아가 있는 것 같아 돌아보는 내 모습이 그러나 없는 풍경이 조금 채워진다. 그래서 자꾸 듣는다.
그 많은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그리운 그대 모습을 본 것 같았기에 뒤돌아보니 당신은 없었어요
박인희, 당신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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