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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한 가게에 앉아 추위에 떨면서 내가 태어난 해에 출간된 책을 읽고 있다. 이번 스터디 모임 책이다. 역시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붙들고 내 집중력은 왜 이 모양인가 한탄을 하며 딴짓을 하다 책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블로그까지 들어왔다. 모임까지 2일 남았는데 젠장 다 망해라.

뭔지도 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읽고, 모임 날이 오면 몇 시간 잠 못 자고 일어나 기차 타고 서울까지 가서 발제 듣고, 얘기 나누고, 몇 달에 한 번은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내 몫의 발제를 하는 스터디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 참석할 당시 예언가가 당신은 이 모임을 10년 넘게 될 것이라고 했다면 나는 미친 소리잖아 라고 안 믿거나, 조금이라도 믿어졌으면 도망쳤을 거 같은데. 재밌어서 그다음 모임에도 가고 가고 하다 보니 10년이 지났다. 진짜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재밌으면 계속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게 나쁜 짓이라도 말이다. 왜일까. 재미가 뭐길래. 내 경우는 읽은 책을 책장에 꽂아 놓으면 폼이 나는 것을 재밌어하게 된 것이고 그것도 웃기다. 책장에 내가 고르지도 않은 책이 잔뜩 꽂혀있다. 그런 점이 한없이 웃기고(책장 보면서 웃는다) 맘에 든다. 뭔지도 모르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따라가는 것. 이 과정에서 내가 결정한 건 읽고 나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겠다는 행위 한 가지다. 그러고 나면 이 소득 없는 여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 어려운 책에 대해 자신이 느낀 것, 궁금했던 것에 대해 소상히 말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된다. 엇나간 이야기도, 책과 관련 없는 얘기지만 사람들 만나면 하고 싶었던 얘기도 섞여 있다. 주제를 꿰뚫는(그런 순간 좀 아름답지 않아?) 얘기를 듣게 될 땐 소름이 돋아 어디에 적어놓기라도 하면서 듣는다. 왜 이 모임에 오게 되냐고 물어보면 사람이 만나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 대답을 들었을 때 한참 웃었다. 내 마음을 대신 말하는 사람 말을 들으면 한참 웃게 된다. 내 마음을 대신 말하는 노래를 한참 듣게 되는 것처럼. 의미를 두지 않고 목적을 두지 않고 실익을 따지지 않고 학위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강제성 같은 건 전혀 없는데도 사람이 만나고 싶어서 어려운 책을 끙끙거리며 끝까지 읽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아서 나도 10년을 넘게 어떤 책인지도 모르는 책 앞에 앉아 끙끙대고 있다. 그러다가 정신 못 차리게 나를 흔들어대는 문장을 만나기도 하고, 내 신념이 변경되기도 한다. 내 경우 신념이 여러 번 변경되었는데, 여러 번이나 변경되는 게 신념일 수 있냐고 빈정을 살 순 있지만, 누구나의 신념이 그러하듯 내가 지녔던 것도 웬만한 걸로는 깨부술 수 없는 단단한 성질의 신념이었다. 그런 신념이 여러 번 변경되는 경험은 진짜 신난다고!!! 그러니까 여러분, 우선 신중하게 신념을 지니고 그것을 기꺼이 여러 번 변경해!!! 20대 중반의 나는 지루하리만큼 모든 걸 선과 악으로 구분하길 좋아했고, 담배 같은 걸 악으로 놓을 만큼 하찮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웬만한 욕망을 선과 악으로 재단하지 않는 걸 배웠다.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던 때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었을 때이고, 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긍정하는 사람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욜라탱고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만들 수 없던 사람이 만드는 사람이 되는 변경, 지금 생각해도 신난다. 다시 찾아올까 그런 강렬한 변화가.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만나면서 신념이 깨부수어지는 순간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모임이 끝나면 반드시 ‘맛있는’ 저녁 먹을 수 있는 곳에 가서 소주를 외치며(중국집에선 연태구냥을 외치며) 뒤풀이를 하는 사람들이라 지금 온라인 모임 방식은 굉장히 굉장하게 대단히 대단하게 형편없다.... 사람은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깝게 앉아서 술잔을 부딪치고 술잔 속 술이 출렁이고 웃느라 몸이 흔들리고 그래야 서로에게 엉킬 수 있단 말이다 그렇게 엉겨 붙는 게 생겨야 기억할만한 지점이 시간 위에 핀이 생기는 것이란다 이 망할 코로나야...... (코로나만 끝나면 대전에서 모임을 만들고 싶은데, 무슨 모임을 만들지 모르겠지만 그 모임은 반드시 뒤풀이가 존재할 것이다.... 그것만은 정해져 있다. 알겠냐 써글 코로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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