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때 걔가 손잡이 있는 컵을 마실 때 손잡이 달린 부분에 입 대고 마시길래,
나 : 왜 거길로 마셔??
걔 : 컵을 깨끗하게 안 씻을 거 같은데, 여긴 사람들이 입을 안 댈 거 같아서 여기로 마셔
나 : 근데 거기.... 설거지할 때두 잘 안 씻는 부분일 거 같은데.....
걔 : 아 ????
한 적이 있었음.
그래서 나 지금도 설거지할 때 그 부분을 깨끗하게 닦자나... 내가 여길 깨끗하게 닦으면, 세상에 있는 손잡이 컵 총합에서 내가 설거지 한 손잡이 컵이 포함되면 걔가 좀 안심하고 세상 살까 싶어서. 물론 걘 모르겠지만......
음료 마실 때도 그런 걱정을 하는 걔의 예민함이 20살이던 내 마음에 크게 걸렸어. 저런 걱정까지 하고 산다고 ???? 했지. 걘 내가 (그때 너무나 좋아하던) 버터링을 먹을 때 넌 안 좋아해?? 이거 맛있는데. 하니까 좋아한다면서두 먹지 않았어. 가루가 옷에 잘 떨어지는 과자라 그렇대.... 살면서 할 수 있는 걱정의 종류에 이런 걱정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생전 처음이었어. 가루는 털면 되잖아???
그래서 설거지할 때마다 나 매번 그 생각을 해.... 왜냐면 걘 나를 위해서 뭘 새로 익히고, 안 하던 걸 적극적으로 시도한 최초의 남친이었으니까. 정말 정성을 들여 나를 대해줬어. 그런 걔가 여전히 걱정하느라 마음이 가난해졌음 어쩌나 싶은 거야. 참 좋은 앤 데....
생사도 모르는 지금(가끔 sns에서 이름 검색 해보지만 절대 없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걔가 걱정하던 걸 세상의 총합에서 그 양을 내가 조금(이라도) 더는 것뿐.... 그런 거지.
며칠 전에도 손잡이 있는 컵을 닦으면서 이 생각을 하다가 까먹고 있던 순간이 떠올랐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걔랑 헤어지고 어느 날(매일 들어갔지만, 그러던 어느 날) 걔 다모임에 들어갔더니, 상태 메세지에 "최성아 니 생각하느라 미치겠어" 이런 게 떠있는 게 아니겠음???? 가슴 철렁해서, 걔한테 바로 전화를 걸려다가 뭔가 이상한 거임. 그래서 친구한테 연락해서 걔 다모임에 들어가 보라고 했음. 정말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칭찬해. 암튼 그랬더니 내 이름 자리에 친구 이름이 떴대. 그런 설정을 해놓은 거였음(그 시절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넣으면 적용이 되었음)...... 미친.......
그래도 그런 생각을 했지... 나 보라고 쓴 거라고... 나를 흔들려고. 그렇담 대성공이었고.
갠 당시 벅스에서 제공하던 '노래를 담아서 쓸 수 있는 편지' 기능으로 내게 편지를 썼었는데, 그런 거 계속 남아있을 줄 알고 캡쳐 같은 걸 못 해놓은 게 바보 같다. 내용이 궁금한 게 아니고, 그때 무슨 노래를 담아서 보냈었나. 그런 게 궁금해...
그 시절 내가 피시방 가서 벅스로 노래 듣고, 한메일로 친구들한테 편지를 자주 쓴다는 걸 알고서 할 줄도 모르는 한메일 만들어서 편지 써주고 그랬는데... 첫 메일이 뭐였더라. 쥰내 이상하고 좋았는데.
이거네 ㅋㅋㅋㅋ 지금 봐도 쥰내 이상하고 좋네. 잘 살고 있을까. 좋은 사람이니까 잘 살면 좋겠다. 가끔 걔가 궁금해져. 손잡이 있는 컵을 닦는 1000번 중에 한 번은.
+ 오늘의 노래
이장혁, 레테
언제부턴가 너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아 나쁜 머리를 탓해보아도 자꾸 지워져 가
너의 불 꺼진 창 아래 밤을 새던 그가 정말로 나였는지
너의 생각들로 금세 가슴 뛰던 적이 있기나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언제부턴가 너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영원할 것만 같던 기억도 모두 사라져 가
우리 손잡고 꿈꾸듯 거닐었던 그 거리가 여기였는지
니가 아니면 난 버틸 수 없다고 울던 밤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언제부턴가 너의 모습이 떠오르질 않아
우연히 너를 만난다 해도 나는 모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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