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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4-16 횡계-강릉

 

 

 


친구가 갑자기 자기가 계약한 서브 아파트를 쓰라고 했다. 세상에 서브 아파트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네 사람을 모아서 한 사람당 한 달에 15만 원씩 내고, 돌아가면서 1주씩 그 집을 쓰는 거랬다. 이번 주에 자기들이 쓰는 주라서 쓰라고 그랬다. 얘는 어렸을 때도 갑자기 낯설게 하고 그랬다. ㅁ를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도서관에 오는 애들이 없어서 하복을 입은 우리 둘만 있었다. 도서관엔 나는 놀러 왔고, ㅁ는 공부하러 왔다. 자를 들고 자기 허벅지를 때려가면서 공부를 했다. 공부에 있어 비장함이라고는 없던 나는 그 모습에 진짜 놀랬다. 그 광경의 강렬함에 공부할 때 나도 내 허벅지를 꼬집고 그래 봤지만, ㅁ의 비장함 같은 건 따라 품을 수는 없었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르니까. 그러다가 중3 때 전교 회장 선거가 열렸고, 국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회장 선거 나가볼 사람 지원해라 그래서 나가볼까? 하고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ㅁ도 지원했던 것. 내가 회장이 되고, ㅁ는 부회장이 됐다. 당선 발표가 난 직후 ㅁ가 교무실에 가서 회장이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 사퇴하겠다고 했단 얘기를 어디서 전해 들었다. 울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눈치가 보였다, 나는 부회장 해도 되는데... 그치만 그 말을 하면 ㅁ가 더 자존심이 상할 거라서 모르는 척을 했는데. ㅁ는 그만두지 않고 다행히 부회장을 해주었다. 그리고 훗날 내게 그때 사퇴하려고 했던 거 아냐고 물어봤다. 안다고 대답하니까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를 무시하려던 건 아니었다고. 그 모습에 또 놀랬다. ㅁ랑 교무실에 자주 갔는데 쌤이 “ㅅㅇ야 너도 ㅁ처럼 해놀 거 다 해놓고 놀아라. 너는 놀기만 하잖아, 쟤는 할 거 다 하고 너랑 노는 거다.” 그랬다. 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못 하는 건데요. ㅁ는 고등학교 올라가서 단전호흡에 다니고, 내게 만화 그려서 보여주고,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그래서 놀러 가고 그랬는데 갑자기 어느 날 전학 갔다. 그걸 이틀 전인가 교실에서 선생님이 말해서 알았다. 나도 울고 ㅁ도 울었다. 나는 ㅁ에게 ‘편지할게.’ 그랬는데 한 번도 안 했다.

그러다가 대학생 되고 자기 교대 갔다고, 여름방학에 기숙사 빼기 전에 놀러 오라고 그래서 자전거 8시간인가 타고 놀러 갔다. 그 날은 월드컵 개막식 날이었다. 엄청 거대한 행사가 국가에서 시작하고 있었고, 자취방에서 그 광경을 브라운관 티비로 보던 나는 가슴이 뻐렁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동네 자전거포에 가서 중고 기어 자전거를 5만 원에 사서 ㅁ에게 지금 갈게 전화하고 청주로 달렸다. 무섭고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폴더폰 네이트에 접속해야 볼 수 있는 지도를 보면서 겨우겨우 갔다. ㅁ에게 도착하니까 내게 삼겹살을 사줬다. 그걸 먹고 ㅁ 기숙사 이곳저곳에서 얘기 나누고, 잤다. 그렇게 며칠 동안 거기에 묵었다. 사실 얘기보다는 잠을 더 많이 잤다. 정말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잠은 ㅁ가 만들었다는 음악 감상 동아리방 쇼파에 누워서 음악 틀어놓고 푹 자는 맛이 젤 좋았다. 어느 날 밤에는 기숙사 옥상에 있는 세탁실에 갔다. 세탁물을 돌려놓고 옥상 ㅅ<-삼각 지붕에 올라가 같이 누워서 얘길 나눴다. ㅁ가 누우면 기분 좋다고 해서 좀 무섭지만 누워봤는데 좋았다. 살면서 지붕에 누워 볼 일은 없을 텐데, 별이 많이 보이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없이 있기도 했다. 다 놀고 집에 갈 땐 자전거는 버리고 갔다.

그 밖에 여러 가지로 (지인 중 채식을 최초로 했다던가, 그래서 다니던 대학원 학생식당에 시위해서 채식메뉴를 만들게 했다던가, 예상 너머로 빨리 결혼을 하고, 경매를 겁나 공부해서 집을 저렴하게 사고,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을 데리고 털게 이동 연구를 해서 그 자료로 대전에서 열리는 과학 박람회에 오던 날 나를 초대한다던가 하는 내가 모르는 세계로 자꾸 가있어서) 나를 놀라게 하던 ㅁ가 이번엔 서브 아파트로 연락을 한 것이다. 원래라면 부담스러워서 안 갔을 텐데, 여행도 가고 싶고 흔쾌히 베푸는 호의가 고마워서 갔다.

숙소는 횡계에 있었다. ㅁㅌ가 운전을 하고, 나는 옆에 앉아 음악을 틀었다. 강원도는 도로 주변으로 산이 첩첩이 있어서 대전과 완전 다른 곳을 달리고 있다는 감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는데, 숙소에 가까워질 때쯤엔 해가 뜨고 있었다. 어스름한 풍경을 달리며 듣는 노래는 진짜 끝내주네. 감탄이 나왔다. 음악이고 커피고 접하는 시간과 장소가 언제냐가 맛을 좌우한다. 고불고불한 도로를 타고 달리는 중에 음악을 듣다가 이따금 눈물이 났다. 패닉 기다리다와, 미안해가 유독 그랬다. 따라 부르다가 눈물이 나서 목이 메었다. 널 기다리다 혼자 생각했어. 떠나간 넌 지금 너무 아파 다시 내게로 돌아올 길 위에 울고 있다고. 이 노래가 이렇게 슬펐나??? 낯설었다. 해가 지는 바다에 앉아서 언젠가는을 부르는데 ㅁㅌ가 젊음이 너무 지나가버린 기분이 든다고 그랬을 때에도 눈물이 났다.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젖은 음악은 추억에 남는다. 이렇게.

떠날 시간이 와서 ㅁ가 카톡으로 알려준 대로 방을 정리했다. 안 시킨 청소기 먼지통도 비우고, 전자레인지 문, 냉장고 문, 싱크대 서랍들 손 닿는 부분에 맺힌 손때도 닦았다. 얻어 쓴 침구는 베란다 햇빛 속으로 들고 가 털고서 챙겨간 바디 향수를 몇 번 뿌린 후 잘 접어 원래 있던 옷장에 넣었다. ㅁ한테 잘 있다가 간다고 전화했는데,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그랬다. 얘는 왜 이럴까. ㅁ를 가까이에서 보며 지내는 건 아니라 자세한 건 볼 수 없지만, 멀리서 얘가 긋는 삶의 궤도를 보고 있자면, 삶이 이런 길로도 갈 수 있는 거구나, 하면서 그제야 지나간 궤적을 짐작해보게 되는 것이다. 자꾸만. 그런 얘기를 떠나기 직전에 부엌 식탁에 앉아서 편지에 적었다. 다 쓴 편지는 이불을 접어둔 옷장 안에 넣어놨다.


 

 





+ 오늘의 노래


패닉, 기다리다

https://youtu.be/rjeDvcHOr9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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