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나무
아빠는 물을 가득 채운 빨간 대야에 소사나무 화분을 담갔다. 초딩 고학년이던 내게 소사나무는 국화, 코스모스보단 난이도가 있는, 고학년 정도의 어른이 되어야 아는 나무라고 생각했고, 그 난이도 때문에 나무에 더 호감이 갔다. 그 당시엔 하교해서 집에 오면 아빠 방에 가서 억지로 공부를 했다. 아빠는 내과 의사보다는 아무래도 미래에는 치과 의사가 더 전망이 좋을 것 같다며 직업끼리 우열을 견주며 이 문제 저 문제를 풀게 하고, 영어문장을 소리 내 읽게 했다. 아빠가 저렇게 말하는걸 보면 나한테 의사가 될 자격이 있나 본데, 그래도 의사는 되기 싫은데 공부도 하기 싫은데. 몸을 배배 꼬며 억지로 문제집을 풀었고, 아빠는 내 옆에서 소사나무 가지에 돌돌 감아놓은 철사를 이리저리 만지며 모양을 다듬었다.
소사나무는 자작나뭇과에 속하고 중부의 해안이나 섬에서 주로 자란다고 한다. 달걀형 잎에는 주름치마 같은 무늬가 있고, 뻣뻣한 질감이라 달걀 광 정도의 광택이 나는 모양새. 나무 겉면은 고목에서나 볼 법한 거친 껍질이 달려있어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였다. 한국 특산종이라는데 아빤 이런 사실에 자부심을 좀 느꼈는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한국 토종나무라는 얘길 나무를 돌보는 도중 종종 하셨다. 그런 아빠의 소사나무 가지에는 철사가 감겨있었다. 철사를 움직이는 방향대로 가지 모양을 변경할 수 있다고. 그렇지만 한 번에 확 바꿀 순 없고, 나뭇가지가 적응을 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변경해야 했다. 원하는 모습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해서 늘 철사가 감겨있는 상태였고, 철사가 감긴 면을 빼고 나무가 성장하기 때문에 철사를 풀면 가지에 철사 자국이 고스란히 남았다. 나는 패인 부분을 만지면서 아빠 나무가 아프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봤는데, 분재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셨다. 사람이면 아플 텐데 나무라고 괜찮을까, 나무에 물어보고 싶다. 뭐 괜찮으니까 감아놓으시는 거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파 보여서 그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여러모로 멋있는 나무인데, 이렇게 홈이 패이면서까지 묶여서 커야 한다니, 그냥 자라는 대로 옆에 두고 보는 게 정말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빠가 소사나무를 좋아하는 방법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에 와보니 아빠가 물을 가득 채운 빨간 대야에 소사나무 화분을 담갔다. 소사나무엔 잎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아빠 소사나무가 죽은 거예요? 아빠는 가끔 이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물에 담가 놓으면 살아난다고 하셨고, 할머니는 나한테만 저거 죽은 거 같은데 저렇게 한다고 살라나, 그렇게 아끼더니 하셨다. 소사나무는 잎이 없는 것 빼고는 이전과 그대로인 모습이었는데도 생명력이 없어 보였다. 신기하다, 저리 미동 없이 죽다니. 다 느끼는 그 사실을 아빠만 모르는지 소사나무는 며칠 동안 빨간 대야에 담겨있었다. 아빠는 매일 마당 수돗가에 서서 한참 동안 소사나무를 바라봤고, 어떤 때는 눈물을 닦으셨다. 나는 마루에 앉아 문제집을 풀면서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주제 :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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