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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뭘 좋아했어요?



너무 무겁게 쓰고 싶진 않은데,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무거운지, 꺼내 보면 어떻게 생겼을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꺼내 보지 않은 게 아니라 꺼낼 일이 없었던 거라서 이 글을 적는 지금, 조금 설레기도 합니다. 유년-기, 幼年期. 사전을 찾아보니 어린이의 성장·발달의 한 단계. 유아기와 소년기의 중간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유치원에 해당하는 시기라고하는데 유년기 이후엔 없었고, 정말 그때만 존재했던 엄마가 강렬하게 떠오릅니다.

 

어디부터 꺼내 볼까, 쉽게 얼굴부터 게임 캐릭터를 설정하듯 그려보자면 아빠는 기본 표정이 ʻ해맑음ʼ으로 일 텐데, 엄마 캐릭은 ʻ피곤함ʼ으로 설정될 거 같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동생과 집안을 잔뜩 어지르면서 놀다 보면 퇴근해서 돌아온 엄마가 방을 치우기 시작하고, 밥을 차려주셨어요. 당시 마주치는 어른들은 저를 보면 늘 웃어주셨는데, 퇴근한 엄마의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화가 나신 건가 무서워서 엄마 오는 소리가 나면 숨어있기도 했어요. 지금 떠올려보니 그 표정이 피곤한 표정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모든 생계와 육아를 엄마가 하는 동안 아빠는 도대체 뭘 하고 계셨을까요.

 

다정한 목소리가 몇 군데에서 들립니다. 엄마가 데워준 따뜻한 물을 대야에 담고, 그걸 아껴가며 씻었어요. 더 어릴 땐 엄마가 내 얼굴을 문질 문질 마지막엔 킁으로 끝나는 세수를 했고, 좀 더 컸을땐 손, 얼굴, 엉덩이, 발 순서로 씻고 물을 버리면 된다고 가르쳐 주셔서 그 순서대로 씻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씻을 때 그 순서가 생각이 나요.

 

계란 토스트에서도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는 우유를 넣어 잘 풀어놓은 계란에 식빵을 넣어 흠뻑 적시고, 마아가린을 녹여놓은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렸어요. 노릇하게 익은 뜨거운 토스트 위에 설탕을 잔뜩 뿌려서 밥상 위에 주시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하면서 우유랑 먹었어요. 지금도 외로운 날이나, 기분 좋아지고 싶을 때 먹는, 제일 좋아하는 간식입니다. 며칠 전에 동생과 같이 계란 토스트를 먹었는데요. 동생이 아 엄마 생각난다. 그래서 나도 그래. 하고 대답했어요.

 

엄마는 어느 날부터 퇴근하고 오시면 가방에서 한지를 꺼내서 장판 위에 쭉 펴놓으셨습니다. 서예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셨다며, 쓴 글씨를 보여주셨고, 몇 장은 벽에 붙이며 밝게 웃으셨습니다. 한지에선 먹 냄새가 났는데, 엄마를 웃게 한 그 냄새를 좋은 냄새라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논산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주인이 1층에 살고, 저희는 2층인 양옥 주택으로요. 이사한 지 얼마 안된 주말, 거실 창문으로 바깥을 봤는데, 눈이 부실만큼 밝은 오전 햇빛에 아직은 눈에 안 익은 낯선 풍경이 밝게 보였고, 그 풍경 속에서 엄마와 아빠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습니다. 라켓에 부딪히는 셔틀콕이 통 통 소리를 내며 공중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때 엄마 표정은 정말 환했어요. 행복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요. 이사 온 이곳에선 앞으로 이런 풍경만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생 때 배드민턴을 정말 자주 쳤었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하늘을 향해 셔틀콕을 치면 어느 정도 날아갔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데요. 그렇게 돌아오는 공을 되받아치는 걸 좋아했습니다. 어릴 적 엄마의 배드민턴과 고등학생인 나의 배드민턴을 연결해서 떠올리지 않아도, 엄마의 밝았던 표정이 겹쳐져 떠오를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팠고, 입원하셨고, 수술하셨는데 그런 소식들은 우리를 돌봐주러 오시는 할머니나 고모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엄마와 대화할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어요. 엄마가 하지 않았던 건지, 제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대화할 시간이 없을 만큼 시간이 다급하게 흘러간 건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로 전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더 기억할 수 있을 텐데 적고 나니 아쉽습니다. 엄마는 계속 큰 병원으로 옮겨졌고, 우린 논산에서 대천 친 할머니 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하루는 전학 간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보니 엄마가 와계셨어요. 뜨겁게 데워진 방바닥 위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누워계셨습니다. 밤엔 너무 아프다고 엉엉 우셨고, 나도 같이 울었어요. 다음 날 하교하고 집에 오는 길에 동네 동산에 들러 진달래꽃을 꺾었습니다. 엄마가 이걸 보고 좋아하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다행히 엄마가 예쁘다고 좋아하셨고, 이후로도 이날 보신 진달래 얘기를 몇 번 하셨어요. 그때는 진달래꽃에게 고마웠고, 지금은 진달래꽃을 보면 아픈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좀 쓴 맛이 납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학교 친구들, 선생님 사이에서 ʻ엄마 돌아가신 애ʼ가 되었습니다. 다들 어려워하고, 위로를 해줬는데, 사실 저는 그만큼 슬프지 않았습니다. 흔하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엄마 생각을 하면서 울다가 잠드는 적도 없었어요. 자라는 동안에도 엄마 생각에 슬퍼하는 일은 아주 적어서 슬퍼하지 않는 내가 좀 이상한가?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내게는 있지만, 아빠에게는 없는 특징을 보면 그렇다면 이런 점은 엄마를 닮은 건가?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기억하려고 애는 썼지만요, 엄마를 잘 모르겠어요. 유년기 시절에만 존재했던 엄마를 기억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사실은 더 생겨나지 않고, 엄마에 대해 깨달을 기회도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중단하니까, 더는 알 기회가 사라집니다.

 

그게 당연한 건 줄 알고 자랐어요. 얘기를 꺼내면 슬프니까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자라서 지금에 와보니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피곤한 얼굴, 계란 토스트, 씻겨주시던 모습, 먹 냄새, 배드민턴, 진달래 같은 제가 기억하려 애써서 지켜낸 것만 알고, 나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자랄 때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엄마에 대해 많이 얘기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을 먹게 되면 이건 엄마가 좋아했던 거야. 하고 얘기해주고, 엄마가 좋아했던 영화를 알려주고, 엄마가 좋아했던 음악을, 엄마와 갔던 장소를, 엄마의 최애 소설을, 엄마의 장점과 단점을, 엄마랑 있었던 재밌었던 일을, 엄마의 실수를, 엄마의 꿈을 제게 얘기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빈약한 사실만 제게 남아있어서 어쩌면 죽음이 엄마를 소멸시킨 것보다는, 죽음과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소멸한 것이 더 가슴 아픕니다. 죽는 건 어쩔 수 없이 슬픈 일이고, 슬픈 걸 쉽게 대할 수 없지만, 슬프더라도 죽은 사람에 대해 자주 얘기하면서 서로에게 살아있는 모습을 목소리로, 감정으로, 공기 중에 퍼지는 냄새로 불러일으켜 지면 한 사람의 역사를 오래 지켜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기억 속에 다채롭게 살아있었다면 엄마가 살았던 나이를 내가 지날 때 어릴 때 못했던 더 많은 공감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유년기 보다 많이 자란 나는 이제 무엇이 더 즐거운 방향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 제게 아무도 묻지 않아서 꺼낼 일이 없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이제는 제가 꺼내 봐야겠어요. 엄마는 뭘 좋아했어요? 하고요.

 

 

 

 

주제 : 유년기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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