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픕니다.

블로그 이미지
암헝그리

Article Category

오늘 (302)
oh ↑ (66)
늘 → (236)
가방 (0)

Recent Post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1. 2021.04.21
    20210419 등산은 무엇인가

 

 

 

 

 

 

 

언니~~ 설악산 갈래?

ㅇㄴ이 카톡을 보냈다. 생각 별로 안 하고 바로 가자가자! 라고 답장하고 알아보니 4월은 <산불예방 통행제한 기간>이었다.(세상엔 이런 기간이 존재했다) 설악산은 오를 수 있는 구간이 너무 적어서 지리산으로 변경했다.

 

지리산. 지리산은 무엇인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가 근방에 있고, 섬진강이 흐른다는 건 알았지만...... 나는 코끼리 다리만 만져 보고선 코끼리라고 알고 있던 것이었다. 지리산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뭐 계룡산도 대전에서 오르고 공주에서도 오른다만 지리산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코스만 해도 19코스다.(보통은 5코스 정도?) 산에 한 번 오르면 지형을 얼추 파악해서 다녀왔다는 잘난 척을 할 수 있게 되기 마련인데, 나는 내가 오른 백무동-천왕봉 코스만 알 뿐, 나머지는 아직도 짐작도 안 되고요........ 며칠을 종주하는 산을 만만하게 본 죄로 12시간을 등산하게 되었던 사연이 이제 펼쳐집니다.... 좌쟝.......

 

 

 


오르기로 한 <백무동-장터목대피소-천왕봉-장터목-백무동 코스>는 9시간 코스였다. 하루 전날 내려가서 숯에 구운 지리산 흑돼지에다 지리산 마천골 생막걸리를 기분 내서 마시고 얼큰해져서는 주먹밥 싼 후에 잔 다음, 다음 날 주먹밥을 소중하게 챙겨서 예약해놓은 콜택시를 타고 새벽 6시에 백무동 입구로 향했다. (근데 우리 묵은 숙소 좋더라. 지리산 생태 체험관이란 곳인데, 둘이 6만 원이면 통나무로 지은 깔끔하고 뜨끈한 온돌방에서 몸을 뒹구르르 지지며 잘 수 있다. 바베큐도 할 수 있고, 경치도 좋고, 한적하고. 에버랜드 다녀왔다고 뻥쳐도 될 만큼 튤립이 지천에 심어져 있고)

 



 

 


계곡물이 입구부터 길 따라 옆에 흘렀다. 계곡물을 손으로 꼭 만져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계곡 가는 길이 나왔을 때 주저없이 가서 손을 씻고 물을 튀기며 기분을 내봤다. 푸른색 야생화가 잔뜩 펼쳐진 구간에선 정말... 이게 등산하는 맛인가, 여기 동화 속인가. 나 헨젤과 그레텔인가. 그러면서 셔터를 막 누르고는 ㅇㄴ에게 "나... 아무래도 카톡 프로필에 꽃 사진만은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하니까 ㅇㄴ이 "언니... 그것만은 안 돼..." 해서 겨우 참았다. 이때만 해도 행복했네?

산에 오를수록 기온이 눈에 띄게 달랐고, 곁에 보이는 나무가 달랐다. 오를수록 나무들 키가 작아졌다. 신기하지? 거센 바람길 구간에서 자란 나무들은 바람에 순응한 듯 비스듬하게 누워 자랐다. 유연한 풍경이었다. 오르며 내게 가장 신비했던 사실은 6시간 반가량 걸으며 본 땅 위에는 갖가지 식물이 계속 자라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주든 아니든 같은 건 아무 의미 없이 잔뜩 자라 있었다. 나 같은 인간은 관심받고, 사랑받는 걸로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반드시 인정받고야 말고 싶어 지는데. 그게 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데. 안 그랬다가는 아프고 슬퍼지는데 여기 세상에선 그런 건 아무 의미 없다는 듯이. 때를 맞춰서 제 몫의 꽃눈 잎눈을 틔워내고 있었다. 그런 광경이 아름답고 신비했다. 지리산을 걷는 사이에도 벌써 몇 번이나 무엇을 욕망하고 떨치고 그랬는데 나는.... 거추장스럽게 지닌 이 얼기설기한 욕망은 버려버리고 그 자리에서 아무 돌멩이나 야생화가 되고 싶었다. 정상에 오를 쯤엔 이런 생각이 더욱 가열차게 가득해져선 아득하게 보이는 산 밑 풍경을 보며 "우주가 가깝게 느껴지네... 우주의 먼지가 되고 시프네"라고 말했고, ㅇㄴ은 "응??? 언니 뭐라고???" 했다.

 

등산은 무엇일까. 사실 모르고, 그게 알고 싶어서 오른다. 사람들이 오르는 까닭을 나도 내 두 다리로 직접 걸어보면 좀 알려나 하고 걸어보려고. 안 그러려고 해도 나는 자꾸만 동시대라는 묶음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정을 지닌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해해보고 싶어진다. 그들이 느낀걸 나도 내 내부로부터 저절로 솟는 감흥으로 느끼고 싶어진다. 오은영 쌤은 타인과 마찰이 생기면 굳이 말을 섞어 우열을 가리려 하지 말라고 했고, 가까운 사람과 마찰이 생기면 "네가 그 지경까지 갔구나..." 하라고 했다. 양희은 쌤은 "그러라 그래"하라고 했다. 내 작년 좌우명은 날 공격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이 씨발 새끼가?" 하는 거였다. 그치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사람들 행적을 자꾸만 따라나선다.

 




 

 


정상에 오르니 정상을 나타내는, 한자로 천왕봉이라 적힌 돌덩이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찍어주고 상대를 즐겁게 하는 말을 건넸다. 혼자 오셔서 셀카봉을 들고 찍던 분께 성큼 찍어드릴까요? 묻기도 하고 고맙다고 자기 핸드폰을 건네는 풍경에 우리도 합류했다. 조금 눈물 찡해지도록 사진이 잘 나왔다. 사진 잘 나왔어요. 고맙습니다. 하니까 아저씨가 "내가 찍은 사진이 그럴 리가 없는데... 고마워요" 멋쩍게 웃고 그랬다. 어떤 아저씨는 사진 찍으려고 자리를 이동하다가 흔들리는 돌을 밟고 넘어질 뻔 했다. 그러고 나서 이내 “이 돌 밟고 넘어지는 사람 있겠네...” 하면서 그 돌을 다른 곳으로 치웠다. 산 정상은 사람을 다정하게 만드는구나. 볼 거 다 보고 짐을 챙겨서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오르시던 할아버지가 “내가 여길 아직은 오를 수 있구나."라고 혼잣말을 하셨다. 등산은 무엇일까. 산 정상에 오른다는 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주나. 나는 산에 오르기 전부터 오르는 중에도 이게 내내 궁금했다. 그러나 다 오르고 나보니 의미 같은 것이 아무 의미 없어졌다. 그냥 내 몫을 걸어보는 것뿐이었다. 걸어서 정상에 오르면 아 내가 여길 오를 수 있구나. 같은 혼잣말을 할 뿐이고,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고, 마냥 즐거운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눌 그 뿐이었다. 걸어보고서야 가지려던 의미를 비울 수 있었다. 가벼워졌다.

 




 

 

 

주먹밥은 정말 귀중한 식량이었고, 챙겨간 한 박스에 6개 들은 칙촉은 한계에 닿은 세 번의 순간에 나눠 먹었는데 칙촉은 천재 과자였다... 엥꼬 난 배터리 두 칸은 칙촉이 거뜬히 채워줬다. 너무 힘들 땐 ㅇㄴ이 00-10년대 아이돌 노래를 틀었고 그걸 들으며 걸었다. 카라나 씨스타도 좋았지만 샤이니와 투애니원이 단연 짱이었다. 신기하게 진짜 힘이 난다고 하니까 ㅇㄴ이 "어른들이 트로트 틀고 걷는 이유가 다 있다잉?" 그랬다. 어쩜. 정말 그러네. 우리 세대의 트로트 자리는 00-10년대 아이돌 노래가 차지하지 않을까?? 맞장구치면서 정말 그렇다고, 그러고 보면 오늘 본 사람들도 우리보다 다 어른들이고, 우리도 어른들이 하는 거 해보기 전엔 저런 걸 왜 해?? 하다가도 막상 해보면 왜 하는지 알겠고 그렇다고 했다. 그래도 카톡 프로필에 꽃 사진만은 올리지 말자고도 했다..... 왜 난 올리고 싶은뎅....

 

내리막길을 정말 겨우 겨우 내려가고 있었다. 남들은 3시간 반 만에 내려간다는데, 우린 5시간 넘게 걸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조난 아니냐?? ㅠㅠ 하면서 내려가는데, 우리보다 늦게 올랐던 수녀님이 휘휘휙 하면서 내려가셨다. 아..... 수녀님 저희에게 가르침을.....ㅠㅠ 다들 도인 같아 보였고 우리만 너무 힘든 이유는?? 우리 4시 반에는 내려갈 테니까 입구 쪽에 있던 식당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막차(저녁 6시) 타고 휭 가자~~~ 했던 계획은 커녕 막차 놓치기 직전이 돼서 막판에는 속도를 가열차게 내야 했다..... 장장 12시간 등산..... 지리산이라는 것은 겁네 크고 무섭고, 그런데 돌아오고 나니 내리막길 잘 내려가는 트레이닝이 하고 싶어지네?? 담번엔 더 잘 내려갈 하체가 갖고 싶어지네???

 

다음 날 몸져누워있는데 ㅇㄴ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 우리 담부턴 짧고 굵게 등산하자." 그래.... 내 맘도 마찬가지야.... 맞장구 답장했는데 이렇게 답장 왔다. "우리 한라산(같이 등반했다) 지리산 올랐으니까 이제 설악산 가야 하는 거 알지??" 얜 내가 아는 애 중에 젤 아침잠 없고, 젤 바지런한 애지만 오늘도 아침 8시 반에 눈 떠서 극장 가서 영화 두 편 보고 왔다는데... 나만 왜 이럴까... 몸 회복되면 설악산 갈 준비나 슬슬 해야겠다.     

 

 

 

 

 




+ 오늘의 노래

 

등산요로 최고다.

 

 

너무 아름다운-다운-다운 (그곳으로)
너무 아름다운-다운-다운 (데려가 줘)
더 보여줘 다음-다음-다음 (더 보여줘)
너무 아름다운-다운-다운-다운 view

 

 

샤이니, 뷰

youtu.be/UF53cptEE5k

 

'늘 → >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502 어제 술마시고 놀아서 휴일에 하는 설거지  (0) 2021.05.02
20210423 가게 얘기(1)  (0) 2021.04.23
20210415 아침부터 하는 음악타령  (0) 2021.04.15
20210415 너무 좋은 댓글...  (0) 2021.04.15
20210412 잼잼  (0) 2021.04.15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