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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24
    나란 책

 

 

 

 

1

나란 애 왜... 눈치가 없을까. 신이 소원을 두 개 들어주겠노라~~~ 하면 하나는 노래를 짱 잘 부르게 해 주세요, 딱 4곡만요. 하나는 제 눈치가 (남들 만큼만 이라도) 있게 해 주세요. 하고 빌고 싶다. 노래는 왜냐면 목소리로 내 마음대로 마음껏 표현하며 불러보고 싶어서.(소리를 너무 사랑해) 눈치는 정말 있으면 좋겠다. 그럼 언어 아닌 기호를 보내도 쩔게 읽어 낼 텐데. 언어에 꽁꽁 숨겨놓은 뜻도 찾아서 읽을 텐데. 나는 은유고 힌트고 모르겠단 말이야!  

 

 

2

친구한테 나 왜 이렇게 눈치가 없을까... 그랬더니 야 너는 티가 다 나잖아. 숨길 줄 아는 사람이 눈치도 있는 거야. 그래서 아니! 내가 그렇게 티나? 그랬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래 ㅋㅋㅋㅋㅋ 라고 보냈다... 아니 그 정도냐고... 친구가 나는 상대가 모를 거라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를 말래... 정말 시무룩해진다... 나 우울하니까 배경음악 깔아줘... BGM : 숨길 수 없어요 - 롤러코스터

 

 

3

고사리과 식물은 뿌리가 물에 젖어 있는 건 싫어 하지만, 잎이 물에 젖어 있는 건 좋아한다. 습한 걸 좋아하면 뿌리에도 물기가 잔뜩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얘네들도 섬세한 성격을 가진 애들이다. 열대 지역 숲에 살던 애들이니 열대우림을 상상해보면 좀 이해하기 간편해진다. 아주 크고 우거진 열대 나무들이 이미 햇빛을 선점했고, 얘네들은 심해어처럼 그 밑 햇빛 드문 지면에서 자라난다. 태양은 뜨거운데 비도 많이 오는 열대 기후므로 습도는 쎄고, 배수는 잘 되는 환경. 고사리과는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 (아마도) 뿌리라도 건조하게 숨통이 트여야 하겠는 그런 환경이 고향인 친구들이다. 올해 여름에는 밖에 둬서 키웠는데 비를 속절없이 맞게 뒀다. 그래도 여름의 특별한 기운 효과인지 자주 뿌리가 젖는데도 신나게 자라는 모습이 보여 계속 두다가, 최근 기온이 많이 떨어져 추워할 애들 먼저(고사리과 애들) 실내로 들여 키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흠뻑 물을 주고, 매일 2~3번씩 분무하며 돌보고 있다. 그랬더니 여름 지나서는 성장을 멈춘 듯 보이던 식물들이 새순을 마구 내고 있다. 2주 정도 꾸준했을 뿐인데, 내 성심성의가 전해졌나. 경계를 풀고 편하게 지내기로 한 것인가. 물을 줄 때면 꼭 새순을 찾아서 본다. 새순을 보려면 한껏 몸을 낮춰야 하고 또 곰곰이 봐야 한다. 그러면 끝을 동글게 말고 있는 귀여운 새순들이 보인다. 식물이 경계를 푼 것이 보인다. 곰곰이 바라보는 과정은 어떤 기분 좋은 상태에 이르게 한다. 내가 분무를 건넨 것에 새순으로 답하는 식물의 티 냄을 바라보는 것. 이럴 때는 언어가 없어도 알아챌 수 있다. 너네 지금 환경이 아무래도 편해졌구나?라는 것과 그렇다면 이 상태를 유지할게. 하고 답을 해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므로 즐겁다.

 

 

 

 

 

 




4

나보고 노아에게 유난스럽게 해 준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곰곰이 바라보다가 노아가 싫어하는 내색이 보이면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꼭 해야 하는 발톱 깎는 일, 양치하는 일은 해야 했지만, 그것도 노아가 너무 싫어하면 멈췄다가 기분 좋아 보일 때 해치웠다. 노아가 뭘 좋아하는지는 크게 알아채지는 못했는데(좋아했다가도 금세 싫어함), 고양이라는 동물은 싫은 티는 잔뜩 내므로 싫어하는 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노아가 하기 싫어하는 걸 하는 건 나도 싫다. 노아의 행복이 나의 행복. 예전에 나랑 오래 살자고 (내가 봐도 드럽게 맛없어 보이는) 건강 생식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노아가 정색하고 싫어하길래 한 달 반쯤 지나서는 야, 너도 먹는 행복이 젤 크겠지? 내가 뭔데 그 행복을 뺐냐. 좋아하는 거 마음껏 먹으면서 살아라 하고 그때부턴 간식을 잔뜩 주며 지냈다. 그러길 잘한 게 요즘 그때 찌워 둔 체중 덕에 노아가 버티는 것 같다. 안 먹어서 몸무게가 1.4키로 빠졌으니까... 이런 말 없는 동물을 키우려면 곰곰이라도 봐야 미세한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아픈지, 기운이 약간 더 회복되었는지, 밥은 얼마나 먹었고 얼마나 쌌는지 바라보고 읽어내야 노아가 사는 동안 즐거울 수 있다.

 

 

5

눈치가 없어서 나란 애는 곰곰이 바라보게 된 것이 아닐까. 어떻게든 읽어내고 싶으니까. 읽어서 대답하고 싶으니까. 그치만 그렇게 바라보는 걸로 알아낼 수 있는 건 극히 적다. 그나마 말 없는 생명체 한테나 먹히는 읽기 방법이다. 천만다행 안 질리고 오래 짙게 바라보는 일엔 진짜 자신 있다. 그러니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다면 말하는 게 좋다고. 말을 도저히 못 하겠을 땐 동일한 기호를 오래오래 보여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언젠가는 읽어 낼 거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당신을 아무 평가 없이, 아무 잣대 없이, 아무 추측 없이, 있는 그대로 읽는 건 내가 잘할 수 있고, 무척 즐거워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감추지 말아 줘. 내 곰곰한 시선에 너를 보여줘, 새순이든 싫은 것이든 무엇이든. 그러면 내가 볼게. 그러고 나서 네게 꼭 대답할게. 나도 있는 그대로 꼭 대답할게.

 

 



+ 오늘의 노래
나란 책

 

 

youtu.be/ca4-zrEkx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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