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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1.05
    20210105 그리지 못했지만 축하해!

 

 

 

사랑 초기에 나는 널 무지 그리고 싶었다. 네 요소요소를 선으로 따라가며 하얀 종이에 흑심 가루를 검게 묻히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네 온전한 형태를 훼손하는 일이 될까 봐, 어디 하나 흠집 낼까 봐 아까웠다. 지금 상태로도 아름다운데 내가 개입할 곳이 어디 있다고. 나는 그저 세상에 놓인 네 그대로를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너무 영글어 보이는 곳은 못 참고 맛보듯 조심조심 핥으며 보냈다.

그림으로 그리려면 정말 오래, 구석구석을 깊숙하게 봐야 한다. 그리지 않더라도 이미 그렇게 샅샅이 보고 있었지만 굳이 그리고 싶었던 건, 아직 안 본 곳이 행여 남아 있을까 봐서였다. 그건 싫었다. 네가 너무 아까운데... 그러면서도 모든 곳을 차지하고 싶었다. 간밤 소복하게 눈 쌓인 풍경을 그대로 지키고 싶으면서도, 밟는다면 내가 제일 먼저 밟고 다니고 싶었다. 디지털 세상 최소 단위라는 1픽셀씩을 옮겨 찍는 시선으로 네 표면을 다 건드려서 어디 하나 1픽셀 나간 곳 없이 온전한 형태를 구현해내듯 그렇게 모조리 내 눈으로 널 야금야금 깨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널 지금까지도 그리지 못했다. 네게 흠집을 내가 내놓고 내 가슴이 너무 아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던 시기도 사는 게 으레 그런 순서인 것처럼 지나갔다. 널 훼손하는 게 점점 쉬워졌고, 가슴은 덜 아파왔다. 어느 땐 내 가슴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부러도 널 훼손했다. 그어도 자르지 못하는 문구용 칼날처럼 굉장하다는 사랑도, 미세하고 예리하던 사랑도, 반복되니 무뎌져 갔다.


결국 내가 널 이렇게 훼손할 건데. 예전에 아깝다고 그리지 않았던 게 바보 같다. 널 그렸다면, 아주 작은 단위씩 정확하게 옮겨 찍다가도 있잖아, 이제 그려 넣을 지점은 유독 더 사랑하니까 좀 전에 그은 선과 다른 표정의 선을 그어 넣을 거야. 떨리던 내 목소리, 네 상기된 뺨, 빨개진 귀, 자꾸 웃던 도톰한 아랫입술, 유난히 소리를 내며 넘어가 창피하던 내 침, 긴장하느라 떨어진 식욕 같은 선을 그려 넣을 거야. 그러는 사이 너를 아끼며 보던 나도 담겼을 거야. 그게 내가 네 형태에 입힐 내 사랑 선이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밤이 됐을 때 네게 지금 몇 시야? 물었고 네가 11시 35분. 조금 이따가 지금은? 물었고 네가 11시 43 분하고 대답했다. 그러다 조금 지나 네가 내게 고마워~ 그래서 나는 앗!! 생일 축하해!! 그랬고. 네가 또 고마워~ 그랬다. 한발 늦은 나도 웃고, 뒤죽박죽 생일 축하를 만든 너도 웃고, 같이 한참을 웃었다. 오래된 사랑은 그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둥근 선으로 굵게 휙휙 그려낼 수 있는, 무뎌지고 덜 아파오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 오늘의 노래

 

 

내 빈곳 없는 마음 앞에 모두 나를 외면한 외면한 그때도 그대만은 내 옆에 서 있었죠 함께 노래 부르며 함께.

 

내 잘못을 보았을 때도 기다려준 말없던 날 향한 믿음들 그럴 때마다 난 볼 수 있었죠 내가 가야 할 옳은 길을.

 


조규찬, 우리 한땐
https://youtu.be/2 m 25 CSBGW5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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