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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03
    박완서, 그 남자네 집 (후기)

 

 

 

 

책 추천해주신 ㅎㄴ님이 후기를 기다린다고 5번 넘게 얘기하고 눈을 반짝거리셔서 책을 읽고 생전 처음 후기를 쓰게 되었다. 후기 대신 감탄사 같은 것을 간단하게 한 적은 있어도 후기라니. 후기는 어떻게 쓰는 걸까 처음엔 허둥대다가, 며칠 마음에 두고 지내니 읽으면서 했던 것, 떠오르던 잔상을 기록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굉장하고 거대한 소설을 읽는 동안 일어난 한 작은 인간의 움직임 기록 정도로.  

 

 

 

 

 

책 뒷면과

 

 

 

뒷면 글이 적힌 본문.

뒷면 글인지 모르고 읽다가 요망해서 캡쳐했는데 발췌된 글이라 신기했다. 

 

 

 

 

 

 

 

 

읽으면서 검색한 단어

 

 

 

궁기

 

 

 

 

 

 

카바이트

 

'창백하게 일렁이던 카바이트 불빛' -36p 같은 문장과 책 후반에 나오는 카바이트 냄새(맥주 마셔서 어딘지 못 찾겠음)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카바이트 고체 연료의 가스를 이용해 불을 붙이는 램프로 추정. 이름은 낯설지만 본 듯한 과거의 생김새를 했고, 냄새까지 짐작이 된다.

 

 

 

 

 

 

 

홍예문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모르고 읽어도 분출하는 꽃봉오리가 문 주변에 가득 피어있을 것 같은 이름. 검색을 해보니 아치형의 돌담 모양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우아하고 기품 있고 근사한 모양새. 집에 이런 문이 있다면 드나들 때마다 문이 자아내는 느낌에 일정 압도되어 어떤 특정 상태가 될 것 같다. 

 

 

 

 

 

 

 

읽는 중의 나

 

 

 이 책을 추천한 ㅎㄴ님, 정말 미친 추천이었습니다.

 

 

 

 

 

쪽 혹은 문장

 

정말로 압도된 지점

마지막 쪽에 쓰인 '나도 애끓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안았다. 무너지듯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를 읽고 나서 소설 앞쪽에 쓰인 '나는 그의 어깨가 요동치는 걸 보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를 보듬어 내 품 안에 무너져 내리게 하고 싶었다. 그때 그가 바란 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위안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감추고 있는 건 지옥불 같은 열정이었다'  을 다시 읽으러 갔다가 한참을 모든 감각이 정지된 상태로 소설에 표현된 상대의 무너짐을 대하는 화자의 다른 태도에 빠져들어 미칠 뻔했다. 지옥불에서 물처럼 담담이라니. 작가님. 진짜. 저 미쳐요ㅠㅠ 

 

시간이 흐른다는 걸로는 한 사람이 어떤 상태를 대하는 태도가 저절로 변하진 않는다. 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알고, 그걸 안다면 태도의 변화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도 안다. 차이가 나는 건 (그 차이가 아주 얇더라도) 다른 차원에 문을 내는 거니까.

책은 긴 세월을 빠르게 돌리다가 잠시 멈춰 재생하는 테이프처럼 화자가 겪었던 일들을 보여줬지, 세세한 심정을 일일이 밝히진 않으니 시종일관 새침한 화자의 툴툴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풍경을 따라 걷던 내가 이 변화를 만났을 때는 두 인간의 기나긴 세월에도 어디 절 5층 석탑처럼 동일한 그것을 어떻게든 완벽하게 소화해 낸 감동과 마주했다.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건, 모습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같은 모습으로 과거와 다른(전환된) 이해를 품고서 지금을 안아내는 것일까. 요?? 작가님ㅠㅠ ??? 계속 무너져내리는 질문을 버리지도, 질문을 변형하지도, 쉽게 아무 답을 내리지도 않고서 끝끝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물처럼 담담하게 안아내는 광경인가요??? ㅠㅠ 캡쳐한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영문 모르고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서 망망대해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파편같이 아주 작은 인간이 된다.  너무 커다란 것이 나를 덮쳐 오 므 로....

 

 앞 내용

 

 뒷 내용

 

 

 

 

 

 

 

 

 

 

또 나를 미치게 한 지점은ㅋㅋㅋㅋㅋ으아ㅋㅋㅋㅋ 130p 앞 뒤로 내리 이어지는 50-60년대 한국인의 밥상편. 며느리인 화자는 시어머니의 지극정성 유난스러운 사계절 음식 장만을 경멸스럽다고 분명하게 말했고, 얼마나 유난스러운지 상상 이상을 보여준다는 듯 험담처럼 얘기를 쭉 펼치는데, 중간중간에 친정엄마도 이와 같은 요리를 하지만 엄마의 요리는 여기에 댈 게 아니라면서 험담인지 찬사인지 모르게 정말 많은 분량을 들여 음식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계절 특미를 담아낸 단락이라 읽는 내가 속한 계절의 음식이 언급되는데 어찌나 맛있게 표현하는지 이걸 못 먹고 이 계절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서러워지는 증세를 앓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이것을 먹고 말겠다는 목표가 생기고.. 이쯤 되면 사랑에 빠지라고 쓴 글인데, 그것을 툴툴대며 말하는 화자의 매력에 빠져 아니 뭐 이런 화법이 다 있지??? 하게 되는 기이한 한국인의 밥상편. 잃은 입맛을 찾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130p 근방의 글을 읽는 것 추천합니다.

 

 맛의 조화의 극치, 먹는 즐거움이 행복감까지 가는 민어

 

 

 

 

 

 

 

 

 

이쯤에서 한번 더 미칠 뻔했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둑거렸다. 로 장이 끝나는 부분을 읽을 때였다. 마지막 온점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럽게 소설 앞쪽에 나온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그해 겨울부터 온갖 꽃이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이는 5월까지 젊음이 빛나는 한가운데 서서 빛나던 자신의 모습을 말하던 소설은 이후 늙은이가 마지못해 자리를 뜨는 마음을 적는다. 어느 시절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중심에 빛나게 서있던 화자가 스스로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한 책에 담기는 것이 왜 이렇게 미칠 것 같이 가슴을 치지.

 

구슬같은 그해 겨울

마당에서 분출하듯 피어나는 온갖 꽃


 나는 어디를 가야하나.

 

 

 



이 외 너무 좋았던 문장들은 참지 못하고 사진 찍었다.

 

 

화면서 찍힌 글 모두 좋다. 특히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 그것을 비밀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밀이라고 해서 부끄럽거나 부도덕한 것 하고는 다르다. 이 문장은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한 내 내부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것만 같아 엄청 떨렸다. 그대로 품어도 된다고, 비밀이라고 해서 부끄럽거나 부도덕한 것과 다르다고 말하시면 저는요 선생님만 믿고 갑니다ㅠㅠ 하고 그 돌멩이를 손에 계속 그대로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ㅠㅠ

 

 

 

 

 

 

 

선생님 이렇게 쓰시면 저도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해요ㅠㅠ 읽는데 마음 들뜨고 야릇해져... 강풍같은 감정을 생생하게 전하는 것 너무 경이로웠다. 아마 소설에 빠져든 것도 여기서부터일 것이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는데 적어도 감정 묘사가 10쪽은 되는 줄 알았던 것이 많아야 한 쪽에 쓰인 게 다라는 것에 충격을 금하지 못함. 이렇게 짧게 다뤄지고 지나갔다면 제 뇌리엔 왜 소설의 절반을 차지한 것처럼 느껴지나요. 

 

 

 

 

 

은행원이라는 게 웬만한 허물은 덮고도 남을 만큼 대단해 보였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보면 모르냐. 허둥대고 있었다. 미쳐...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서 남편의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 나는 그까짓 한 번 꼬집어주는 걸로 시어머니의 종교요, 제왕인 남편을 여봐란듯이 학대하는 쾌감을 맛보려 했지만 그의 팔뚝은 단단하고 성질은 유들유들했다. 참을 수 없이 좋다. 참고 싶은 의지도 없지만. 

 

 

 

 

 

 

 

 

 

 

 

신랑도 아마 처가 마련해준 게 이바지라기엔 너무 약소해 보였나 보다. 나는 속으로 인절미라도 한 말 해줬으면 저 사람이 저러지 않아도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나만 마음고생해야 된다는 법 있나, 하고 그 사람 몫의 신경 쓸 일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모른 척했다. 에서 저만 기절했나요? 체면 생각하고, 심지어 여성이 남자 체면까지 다 짊어지던 시대에 나의 몫, 그 사람의 몫을 읽는 이에게 들려주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기쁘고 즐겁다. 

 

 

 

 

 

 

 

 

분수에 넘치는 사치가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 시대를 만나 시가 되는. 이 흐름에 제 무의식을 맡기고 이대로 떠내려 가볼게요ㅜㅜ 시였다. 에서 정신을 잃었다.

 

 

 

 

 

 

 

 

 

 

나는 보석보다 그의 허황된 약속이 더 좋아 자꾸자꾸 부추겼다 / 나는 내 식구의 밥줄의 존엄성을 무시할 만큼 연애질에 눈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춘희 얘기 비중이 왜 높아지는지 읽을 때는 의문이다가 나중에 비비탄처럼 터지는 엠병이 날아가 박히는 곳이 죄다 역사가 여성을 써먹다 버린 후 지워버린 곳이어서 돌 뻔했다. 중산층에 머무는 화자가 춘희를 계속 끌어오는 이유는 계급의 의무감일까 여성이라는 동질감일까 시대의 죄책감일까. 춘희가 말을 쏟아내며 엠병을 내뱉을 때마다 아무 곳에서 환대받지 못한 이의 고통이 내 것인 것처럼 닿아 견디기 어려웠다. 책은 그 남자의 집이라 하며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춘희를 말하면서 그 남자가 누구인지를, 집이 누구를 살게 했는지를, 이민 간 춘희가 머물지 못한 집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다시 한번 그 남자의 집이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하게 했다. 

 

 

 

 

 

 

읽으면서 자꾸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 그것을 기록해보면

 

 

 

 

 

 

피터팬컴플렉스, 다모두그냥 

youtu.be/arpDdV2LzIE

 

 

 

 

 

 

 

 

 

 

 

 

 

 

 

 

 

 

 

곽진언, 나랑 갈래

 

youtu.be/qgWcoD3Tn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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