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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6 정월 대보름이면 달이 다섯 군데 뜨는 강릉

 

 

 

 

 

정월 대보름이 뜨는 밤에는 바닷가를 걷고 싶어 진다. 자꾸 움직이는 바닷물 끝자락을 따라 걷고 싶다. 하늘에 떠있는 과하게 크고 밝은 달을 보다 바다 위에서 물결치는 달을 보다 하면서 걷고 싶다.

 

정월 대보름 하면 기억에 남는 달 이야기가 있다. 과거 강릉에 처음 놀러 갔던 날, 여행도 할 줄 모르던 때라 종착지를 정해두지 않고 그냥 걸어 다녔는데, 몇 시간을 걷다가 해 질 때쯤 해서 어느 마을 입구에 멈췄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였다. 마을 입구에는 정월 대보름 맞이 쥐불놀이 행사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저 멀리 논에 사람들이 꽤 모여서 하얀색 간이 테이블 위에 비닐 깔고 놓인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는 상당히 크고 높은 짚더미가(한 3m 높이?) 고깔 모양으로 쌓여 있었는데 그만한 규모를 살면서 본 적이 없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걸 이따가 태운다고?? 싶고, 태우면 어떤 광경이 되는지 상상이 되면서도 안 됐다. 짚으로 만든 노끈이 트리 전구 장식처럼 짚더미를 감고 있었다. (조선식 트리 같은 뉘앙스...) 노끈엔 소원을 적은 종이를 끼웠다. 사람들은 천 원짜리를 끼워두기도 했다. 더 큰 효능을 바라고 끼운 듯하다. 사람 마음은 참 신기하다. 영험함이 돈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일까, 유전자에 배인 토속신앙일까. 나도 가서 시간이 지나면 뭐라고 썼나 기억에 남지 않는 소원을 적어 끼우고 음식이 놓인 테이블을 기웃거렸다. 낌새를 눈치챈 마을 주민께서 저리 가면 음식이 차려져 있으니 먹고, 이따가 짚 태우는 걸 보고 가라고 했다. 눈치 좋은 오지랖 사람 최고. 알려주신 곳으로 가서 이렇게 공으로 먹어도 되나 약간 눈치를 보며 음식을 먹고 나서 사람들이 하는 쥐불놀이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면서(내향인 습성) 불 피우는 시간이 오길 바라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때 양푼 주전자를 든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막걸리 한 사발 하라고 했다, 강릉 막걸리 안 마시고 가면 강릉 온 거 헛것이라고 하면서. 원래도 처음 가는 동네에 가면 그 동네에서 만드는 막걸리를 마시는 걸 좋아해서(모든 지역엔 그 지역 이름이 붙은 막걸리가 존재한다. 그중 제조일과 유통기한 간극이 한 달 이내인 것을 마셔야 한다. 그게 생막걸리이기 때문에....) 마시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주면서 기가 막히게 맛있는 안주를 띄워 줄 테니 잠깐 따라오라고 했다. 아저씨는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따라 올라갔다. 아저씨가 저 멀리를 가리키며 저기 저기가 바다라고 했다. 바다가 가로로 길고 두껍게 그어놓은 파란 선같이 보였다. 그리고 가까운 곳을 가리키며 여기는 경포대 호수라고 했다. 내가 바다인 줄 알았다고 하자 약간 무시하는 뉘앙스로 에 강릉에 왔으면 경포대는 알아야지 그랬다. 강릉 대보름에는 달이 다섯 군데 뜬다고 하셨다. 달 하나는 하늘에(같이 하늘을 봤다) 하나는 저기 바다 위에(역시 같이 봤다), 또 하나는 경포대에(같이 말했다) 또 하나는??? 이 막걸리 잔에ㅋㅋㅋㅋㅋ 그럼 또 하나는 어디냐, 바로 님의 눈동자에 뜨지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아저씨 갑자기요ㅋㅋㅋ 갑자기 닥친 달 낭만. 내 흥을 돋웠다ㅋㅋㅋㅋ 과연 정월 대보름의 밤이군 하게 되는 상황. 막걸리 잔에 달 띄우고 님 눈동자에 뜬 달을 보면서 마시는 게 최고의 안주라며 다섯 개 달을 다 본 다음에 쭉 마시라고 하셨다. 강릉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에 경포대에서 그렇게 마신다며. 미쳤다ㅋㅋㅋㅋㅋ

 

소방차가 여러 대 도착해서 짚더미 근처에 주차되었다. 이제 하이라이트 행사를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꽹과리, 장구 같은 걸 치고 이장처럼 생기신 머리 희끗한 분이 뭘 읽기도 하다가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짚더미 주변을 돌며 노끈에 끼워진 돈을 뺐다. 돈도 태우나?? 궁금했는데 그럴 리 없었군. 짚에 불을 붙였다. 짚더미 전부에 불이 붙자, 불 높이는 짚더미 1.5배 높이로 솟았다. 치솟다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거구만. 살면서 이렇게 거대한 불덩이를 본 적이 있던가? 절대 없지. 생각보다 무서웠고 좀 오바 아닌가 싶었던 소방차 꼭 필요했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불이 흔들리면 더 무서워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동시에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마음을 홀라당 뺏겨버렸다. 이 광경을 본다면 불을 신으로 모셨을 과거 인간의 심경을 현재의 인간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바라봤다. 보면서 아까 적은 소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말해보기도 하고(그렇게 하면 더 영험해질 것 같은 기분), 평생 잊지 못하겠지? 내년 정월 대보름에 또 오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봤다. 짚이 다 타기 전에 고속버스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 떠나야 했다. 아쉬웠다. 택시를 타러 도로가로 나가면서도 자꾸 뒤돌아 불덩이를 바라봤다.(그날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사진이 싸이월드에 있다... 싸이월드가 사라진 현재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

 

이후 정월 대보름에 강릉에 다시 간 적은 없고 행사 이름도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그 행사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치만 우연한 경험치고 굉장했던 그 일로 정월 대보름을 좋아하게 됐다. 일 년 중에 제일 크게 뜨는 달을 기념하는 일은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는 꼭 정월 대보름 밤에 달을 보면서 해변을 걷다가 해안가 어느 쯤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잔을 꺼내 들어 술을 담고 달을 띄워서 마시고 싶다. 일행에게 여기에 지금 달이 네 개 떠있는데 알고 있냐고 말하면서.

 

 

 

 

 

 

+ 오늘의 노래

달 관련 제일 좋아하는 노래.

 

 

오늘에야 비로소 사랑한단 말을 들었네

하지만 왜 더욱 허전한지 몰라

 

기다렸던 만큼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네

그리고 왜 더욱 허전한지 몰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단지 아픈 마음의 위로일 뿐

 

 

이상은, 달

www.youtube.com/watch?v=R0LbT739Z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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