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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읽은 서영님 글이 넘쳐흐르게 좋아서 오늘 일어나서 또 읽었다. 지금에 다부지게 서서 정확한 시선으로 당시의 촛불과(4년 전) 이후의 흐름을 다층으로 읽어낸 글(두근) 

 

 

넘쳐흐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붕괴하지 않는다.

 

 

본문에 쓰인 이 문장, 오늘 꼭 쥐고 산다.

 

 

 

 

brunch.co.kr/@annwn/11?fbclid=IwAR3hGtvBQhV_jLcGI5DRIKCo6rMV964-zOyBrC5ejlDDAWDNNo8s-TjOjRc

 

페미니즘 복합체의 생존 투쟁

<촛불혁명 4주년 학술토론회 : 촛불혁명과 포스트 코로나시대> 발제문 | 2016년 촛불 당시, 촛불 시민들은 박근혜에게 “미스 박”이라고 부른 DJ DOC를 무대에 서지 못하게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brunch.co.kr

 

 

 

 

 

 

새벽에 읽고 너무 좋은데 댓글 남기기 수줍어서 남길까 말까 하다가 그렇잖아도 외로운데 우리에게 더 많은 표현과 공감이 필요하잖아? 생각하고 댓글을 남겼고, 아침에 일어나 따뜻함이 넘실거리는 대댓글을 받아 읽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를 싣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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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명’ 대사 ‘가면서 생각하지 머~’를 내 근본에 두고 지냈다면, 지금은 더 나아가서 가면 안 되는 곳까지 가고 싶다고 갈 수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해.

 


권력이 잘 작동하도록 구축된 억압 체계 속에 머물 때 아니 허용된 영토에만 머물러야 할 때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살 수 있을까.(물어보는 것 아님...) 권력은 애초에 (주변과 진동하고, 환경에 반응하는 다양한) 생명력을 억제, 감시해서 획일화하거나 고정시키려고 있는 건뎅. 

 


그러니까 끝없이 분출하는 생명력으로 고정된 영토를 벗어나는 것. 영토가 없는 곳으로 뛰어넘어가서 없던 영토가, 구조가, 언어가 만들어지면은 다시 버리고 벗어나 또 나아가는 나아가는 나아가는 시간을 살아야 . 그래야 비로소 (나아)가는 운동성을 획득할 수 있다. 확장하고 분열하다가 소멸하는 생이 진행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분출하는 개인과 개인이 마주쳐 만드는 수많은 연결이 필요하다. 고정된 것들이 흔들릴 만큼 붕괴될 만큼 많은 연결과 분출이. 왜 연결이 필요할까. 단절로는 아무것도 생성되지 않기 때문. 상대와 결합하지 않고서 혼자로는 아무것도 새로 생성할 수 없다. 그게 자연이 우리에게 끝없이 보여주고 표현하는 대진리... 서로가 지닌 영양소를 흡수하고 결합하고 소화하고 배출하지 않는 한 이 굳게 다져진 고정된 영토를 넘어갈 수 없다. 나아갈 수 없다. 새로움으로 다름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그러나 수시로 연결되면서도 구조화되지 않는 연결-동시에-파편화가 가능할까. 이런 걸 실제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길이 보이지 않지만....)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면 가게 자리 잡는 데에 혼신의 힘을 쏟느라 한동안 이 생각은 잊고 지내다가 오늘 정오에 김창완 아저씨 시간을 듣다 위의 생각들이 가슴을 둥둥 치며 떠올라서. (시간 가사에 나오는 시간은 진짜 미쳤고, 정말 수긍해...) 나 한 번 사니까, 내 욕망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사랑을 갈구하지 말고 사랑하는 힘을 갖고 싶다. 가보고 싶은 데로 가고 싶다. 가야 하는 대로 말고.

 

 

 

 

 

 

 

 

 

 

 

 


혁명은 인과율의 법칙 속에서 오지 않는다. -지젝


역사 발전의 법칙 속에서 혁명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자는 영원히 혁명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필연성을 스스로 창조하는 실천이다. 욕망은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함으로써 혁명적이다. -들뢰즈-가타리




이 시점에 들뢰즈 너무나 다시 읽고 싶다ㅠㅠ 답 따위는 남겨놓지 않았지만.

 

 

 

 

+ 오늘의 노래

 

1:48:30  김창완, 시간  

 


youtu.be/jY2FXRvUMbI?t=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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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해주신 ㅎㄴ님이 후기를 기다린다고 5번 넘게 얘기하고 눈을 반짝거리셔서 책을 읽고 생전 처음 후기를 쓰게 되었다. 후기 대신 감탄사 같은 것을 간단하게 한 적은 있어도 후기라니. 후기는 어떻게 쓰는 걸까 처음엔 허둥대다가, 며칠 마음에 두고 지내니 읽으면서 했던 것, 떠오르던 잔상을 기록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굉장하고 거대한 소설을 읽는 동안 일어난 한 작은 인간의 움직임 기록 정도로.  

 

 

 

 

 

책 뒷면과

 

 

 

뒷면 글이 적힌 본문.

뒷면 글인지 모르고 읽다가 요망해서 캡쳐했는데 발췌된 글이라 신기했다. 

 

 

 

 

 

 

 

 

읽으면서 검색한 단어

 

 

 

궁기

 

 

 

 

 

 

카바이트

 

'창백하게 일렁이던 카바이트 불빛' -36p 같은 문장과 책 후반에 나오는 카바이트 냄새(맥주 마셔서 어딘지 못 찾겠음)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카바이트 고체 연료의 가스를 이용해 불을 붙이는 램프로 추정. 이름은 낯설지만 본 듯한 과거의 생김새를 했고, 냄새까지 짐작이 된다.

 

 

 

 

 

 

 

홍예문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모르고 읽어도 분출하는 꽃봉오리가 문 주변에 가득 피어있을 것 같은 이름. 검색을 해보니 아치형의 돌담 모양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우아하고 기품 있고 근사한 모양새. 집에 이런 문이 있다면 드나들 때마다 문이 자아내는 느낌에 일정 압도되어 어떤 특정 상태가 될 것 같다. 

 

 

 

 

 

 

 

읽는 중의 나

 

 

 이 책을 추천한 ㅎㄴ님, 정말 미친 추천이었습니다.

 

 

 

 

 

쪽 혹은 문장

 

정말로 압도된 지점

마지막 쪽에 쓰인 '나도 애끓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안았다. 무너지듯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를 읽고 나서 소설 앞쪽에 쓰인 '나는 그의 어깨가 요동치는 걸 보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를 보듬어 내 품 안에 무너져 내리게 하고 싶었다. 그때 그가 바란 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위안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감추고 있는 건 지옥불 같은 열정이었다'  을 다시 읽으러 갔다가 한참을 모든 감각이 정지된 상태로 소설에 표현된 상대의 무너짐을 대하는 화자의 다른 태도에 빠져들어 미칠 뻔했다. 지옥불에서 물처럼 담담이라니. 작가님. 진짜. 저 미쳐요ㅠㅠ 

 

시간이 흐른다는 걸로는 한 사람이 어떤 상태를 대하는 태도가 저절로 변하진 않는다. 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알고, 그걸 안다면 태도의 변화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도 안다. 차이가 나는 건 (그 차이가 아주 얇더라도) 다른 차원에 문을 내는 거니까.

책은 긴 세월을 빠르게 돌리다가 잠시 멈춰 재생하는 테이프처럼 화자가 겪었던 일들을 보여줬지, 세세한 심정을 일일이 밝히진 않으니 시종일관 새침한 화자의 툴툴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풍경을 따라 걷던 내가 이 변화를 만났을 때는 두 인간의 기나긴 세월에도 어디 절 5층 석탑처럼 동일한 그것을 어떻게든 완벽하게 소화해 낸 감동과 마주했다.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건, 모습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같은 모습으로 과거와 다른(전환된) 이해를 품고서 지금을 안아내는 것일까. 요?? 작가님ㅠㅠ ??? 계속 무너져내리는 질문을 버리지도, 질문을 변형하지도, 쉽게 아무 답을 내리지도 않고서 끝끝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물처럼 담담하게 안아내는 광경인가요??? ㅠㅠ 캡쳐한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영문 모르고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서 망망대해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파편같이 아주 작은 인간이 된다.  너무 커다란 것이 나를 덮쳐 오 므 로....

 

 앞 내용

 

 뒷 내용

 

 

 

 

 

 

 

 

 

 

또 나를 미치게 한 지점은ㅋㅋㅋㅋㅋ으아ㅋㅋㅋㅋ 130p 앞 뒤로 내리 이어지는 50-60년대 한국인의 밥상편. 며느리인 화자는 시어머니의 지극정성 유난스러운 사계절 음식 장만을 경멸스럽다고 분명하게 말했고, 얼마나 유난스러운지 상상 이상을 보여준다는 듯 험담처럼 얘기를 쭉 펼치는데, 중간중간에 친정엄마도 이와 같은 요리를 하지만 엄마의 요리는 여기에 댈 게 아니라면서 험담인지 찬사인지 모르게 정말 많은 분량을 들여 음식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계절 특미를 담아낸 단락이라 읽는 내가 속한 계절의 음식이 언급되는데 어찌나 맛있게 표현하는지 이걸 못 먹고 이 계절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서러워지는 증세를 앓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이것을 먹고 말겠다는 목표가 생기고.. 이쯤 되면 사랑에 빠지라고 쓴 글인데, 그것을 툴툴대며 말하는 화자의 매력에 빠져 아니 뭐 이런 화법이 다 있지??? 하게 되는 기이한 한국인의 밥상편. 잃은 입맛을 찾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130p 근방의 글을 읽는 것 추천합니다.

 

 맛의 조화의 극치, 먹는 즐거움이 행복감까지 가는 민어

 

 

 

 

 

 

 

 

 

이쯤에서 한번 더 미칠 뻔했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둑거렸다. 로 장이 끝나는 부분을 읽을 때였다. 마지막 온점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럽게 소설 앞쪽에 나온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그해 겨울부터 온갖 꽃이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이는 5월까지 젊음이 빛나는 한가운데 서서 빛나던 자신의 모습을 말하던 소설은 이후 늙은이가 마지못해 자리를 뜨는 마음을 적는다. 어느 시절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중심에 빛나게 서있던 화자가 스스로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한 책에 담기는 것이 왜 이렇게 미칠 것 같이 가슴을 치지.

 

구슬같은 그해 겨울

마당에서 분출하듯 피어나는 온갖 꽃


 나는 어디를 가야하나.

 

 

 



이 외 너무 좋았던 문장들은 참지 못하고 사진 찍었다.

 

 

화면서 찍힌 글 모두 좋다. 특히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 그것을 비밀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밀이라고 해서 부끄럽거나 부도덕한 것 하고는 다르다. 이 문장은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한 내 내부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것만 같아 엄청 떨렸다. 그대로 품어도 된다고, 비밀이라고 해서 부끄럽거나 부도덕한 것과 다르다고 말하시면 저는요 선생님만 믿고 갑니다ㅠㅠ 하고 그 돌멩이를 손에 계속 그대로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ㅠㅠ

 

 

 

 

 

 

 

선생님 이렇게 쓰시면 저도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해요ㅠㅠ 읽는데 마음 들뜨고 야릇해져... 강풍같은 감정을 생생하게 전하는 것 너무 경이로웠다. 아마 소설에 빠져든 것도 여기서부터일 것이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는데 적어도 감정 묘사가 10쪽은 되는 줄 알았던 것이 많아야 한 쪽에 쓰인 게 다라는 것에 충격을 금하지 못함. 이렇게 짧게 다뤄지고 지나갔다면 제 뇌리엔 왜 소설의 절반을 차지한 것처럼 느껴지나요. 

 

 

 

 

 

은행원이라는 게 웬만한 허물은 덮고도 남을 만큼 대단해 보였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보면 모르냐. 허둥대고 있었다. 미쳐...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서 남편의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 나는 그까짓 한 번 꼬집어주는 걸로 시어머니의 종교요, 제왕인 남편을 여봐란듯이 학대하는 쾌감을 맛보려 했지만 그의 팔뚝은 단단하고 성질은 유들유들했다. 참을 수 없이 좋다. 참고 싶은 의지도 없지만. 

 

 

 

 

 

 

 

 

 

 

 

신랑도 아마 처가 마련해준 게 이바지라기엔 너무 약소해 보였나 보다. 나는 속으로 인절미라도 한 말 해줬으면 저 사람이 저러지 않아도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나만 마음고생해야 된다는 법 있나, 하고 그 사람 몫의 신경 쓸 일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모른 척했다. 에서 저만 기절했나요? 체면 생각하고, 심지어 여성이 남자 체면까지 다 짊어지던 시대에 나의 몫, 그 사람의 몫을 읽는 이에게 들려주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기쁘고 즐겁다. 

 

 

 

 

 

 

 

 

분수에 넘치는 사치가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 시대를 만나 시가 되는. 이 흐름에 제 무의식을 맡기고 이대로 떠내려 가볼게요ㅜㅜ 시였다. 에서 정신을 잃었다.

 

 

 

 

 

 

 

 

 

 

나는 보석보다 그의 허황된 약속이 더 좋아 자꾸자꾸 부추겼다 / 나는 내 식구의 밥줄의 존엄성을 무시할 만큼 연애질에 눈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춘희 얘기 비중이 왜 높아지는지 읽을 때는 의문이다가 나중에 비비탄처럼 터지는 엠병이 날아가 박히는 곳이 죄다 역사가 여성을 써먹다 버린 후 지워버린 곳이어서 돌 뻔했다. 중산층에 머무는 화자가 춘희를 계속 끌어오는 이유는 계급의 의무감일까 여성이라는 동질감일까 시대의 죄책감일까. 춘희가 말을 쏟아내며 엠병을 내뱉을 때마다 아무 곳에서 환대받지 못한 이의 고통이 내 것인 것처럼 닿아 견디기 어려웠다. 책은 그 남자의 집이라 하며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춘희를 말하면서 그 남자가 누구인지를, 집이 누구를 살게 했는지를, 이민 간 춘희가 머물지 못한 집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다시 한번 그 남자의 집이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하게 했다. 

 

 

 

 

 

 

읽으면서 자꾸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 그것을 기록해보면

 

 

 

 

 

 

피터팬컴플렉스, 다모두그냥 

youtu.be/arpDdV2LzIE

 

 

 

 

 

 

 

 

 

 

 

 

 

 

 

 

 

 

 

곽진언, 나랑 갈래

 

youtu.be/qgWcoD3Tn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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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에 내려가면서 가을을 봤다. 건들면 다 쏟아져 내릴 만큼 단풍이 든 나무들이 도로 좌우 풍경으로 빼곡했다. 가을빛은 세고 따가웠다. 내가 잎이었다면 바짝 말라 낙엽이 되는 게 가능한 강도의 햇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므로 그 정도의 햇빛에 타격은 없었다. 다만 따뜻한 햇빛을 쬘 때 차오르는 뜻 없는 충족감에 노란색 행복이 배어 나왔다. 노란빛이 입혀진 세상을 덜 악하고, 더 부드럽게 보였다. 현실 모습을 알아도 풍경 수채화를 보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효과가 생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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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따뜻한 이불을 같이 덮느라 네 동그란 발 뒤꿈치에 내 발등을 부딪쳐가며 움직이는 꿈을 꿨다. 뒤척이면 스미는 바깥의 찬 공기가 이불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자세를 잡고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웠다. 떨려서 잘 수 있을까 생각했다. 서늘한 공기에 비해 이불속이 따뜻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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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서 술술술 잘도 말했다. 정황을 아는 친구라 간만에 화제에 올려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지나 보니 허탈하다. 쓰다 보니 이 곳에 당시 얘기를 언급하는 것도 아깝네. 공개하려고 쓰는 건데 팔로 상태였다는 게 너무 싫어 차단하고 나서 인스타 계정을 잠근지도 2년 가까운 시간이다. 다시는 취해도 얘기 꺼내지 말아야지. 똥 닦은 휴지처럼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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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란 애 왜... 눈치가 없을까. 신이 소원을 두 개 들어주겠노라~~~ 하면 하나는 노래를 짱 잘 부르게 해 주세요, 딱 4곡만요. 하나는 제 눈치가 (남들 만큼만 이라도) 있게 해 주세요. 하고 빌고 싶다. 노래는 왜냐면 목소리로 내 마음대로 마음껏 표현하며 불러보고 싶어서.(소리를 너무 사랑해) 눈치는 정말 있으면 좋겠다. 그럼 언어 아닌 기호를 보내도 쩔게 읽어 낼 텐데. 언어에 꽁꽁 숨겨놓은 뜻도 찾아서 읽을 텐데. 나는 은유고 힌트고 모르겠단 말이야!  

 

 

2

친구한테 나 왜 이렇게 눈치가 없을까... 그랬더니 야 너는 티가 다 나잖아. 숨길 줄 아는 사람이 눈치도 있는 거야. 그래서 아니! 내가 그렇게 티나? 그랬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래 ㅋㅋㅋㅋㅋ 라고 보냈다... 아니 그 정도냐고... 친구가 나는 상대가 모를 거라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를 말래... 정말 시무룩해진다... 나 우울하니까 배경음악 깔아줘... BGM : 숨길 수 없어요 - 롤러코스터

 

 

3

고사리과 식물은 뿌리가 물에 젖어 있는 건 싫어 하지만, 잎이 물에 젖어 있는 건 좋아한다. 습한 걸 좋아하면 뿌리에도 물기가 잔뜩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얘네들도 섬세한 성격을 가진 애들이다. 열대 지역 숲에 살던 애들이니 열대우림을 상상해보면 좀 이해하기 간편해진다. 아주 크고 우거진 열대 나무들이 이미 햇빛을 선점했고, 얘네들은 심해어처럼 그 밑 햇빛 드문 지면에서 자라난다. 태양은 뜨거운데 비도 많이 오는 열대 기후므로 습도는 쎄고, 배수는 잘 되는 환경. 고사리과는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 (아마도) 뿌리라도 건조하게 숨통이 트여야 하겠는 그런 환경이 고향인 친구들이다. 올해 여름에는 밖에 둬서 키웠는데 비를 속절없이 맞게 뒀다. 그래도 여름의 특별한 기운 효과인지 자주 뿌리가 젖는데도 신나게 자라는 모습이 보여 계속 두다가, 최근 기온이 많이 떨어져 추워할 애들 먼저(고사리과 애들) 실내로 들여 키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흠뻑 물을 주고, 매일 2~3번씩 분무하며 돌보고 있다. 그랬더니 여름 지나서는 성장을 멈춘 듯 보이던 식물들이 새순을 마구 내고 있다. 2주 정도 꾸준했을 뿐인데, 내 성심성의가 전해졌나. 경계를 풀고 편하게 지내기로 한 것인가. 물을 줄 때면 꼭 새순을 찾아서 본다. 새순을 보려면 한껏 몸을 낮춰야 하고 또 곰곰이 봐야 한다. 그러면 끝을 동글게 말고 있는 귀여운 새순들이 보인다. 식물이 경계를 푼 것이 보인다. 곰곰이 바라보는 과정은 어떤 기분 좋은 상태에 이르게 한다. 내가 분무를 건넨 것에 새순으로 답하는 식물의 티 냄을 바라보는 것. 이럴 때는 언어가 없어도 알아챌 수 있다. 너네 지금 환경이 아무래도 편해졌구나?라는 것과 그렇다면 이 상태를 유지할게. 하고 답을 해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므로 즐겁다.

 

 

 

 

 

 




4

나보고 노아에게 유난스럽게 해 준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곰곰이 바라보다가 노아가 싫어하는 내색이 보이면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꼭 해야 하는 발톱 깎는 일, 양치하는 일은 해야 했지만, 그것도 노아가 너무 싫어하면 멈췄다가 기분 좋아 보일 때 해치웠다. 노아가 뭘 좋아하는지는 크게 알아채지는 못했는데(좋아했다가도 금세 싫어함), 고양이라는 동물은 싫은 티는 잔뜩 내므로 싫어하는 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노아가 하기 싫어하는 걸 하는 건 나도 싫다. 노아의 행복이 나의 행복. 예전에 나랑 오래 살자고 (내가 봐도 드럽게 맛없어 보이는) 건강 생식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노아가 정색하고 싫어하길래 한 달 반쯤 지나서는 야, 너도 먹는 행복이 젤 크겠지? 내가 뭔데 그 행복을 뺐냐. 좋아하는 거 마음껏 먹으면서 살아라 하고 그때부턴 간식을 잔뜩 주며 지냈다. 그러길 잘한 게 요즘 그때 찌워 둔 체중 덕에 노아가 버티는 것 같다. 안 먹어서 몸무게가 1.4키로 빠졌으니까... 이런 말 없는 동물을 키우려면 곰곰이라도 봐야 미세한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아픈지, 기운이 약간 더 회복되었는지, 밥은 얼마나 먹었고 얼마나 쌌는지 바라보고 읽어내야 노아가 사는 동안 즐거울 수 있다.

 

 

5

눈치가 없어서 나란 애는 곰곰이 바라보게 된 것이 아닐까. 어떻게든 읽어내고 싶으니까. 읽어서 대답하고 싶으니까. 그치만 그렇게 바라보는 걸로 알아낼 수 있는 건 극히 적다. 그나마 말 없는 생명체 한테나 먹히는 읽기 방법이다. 천만다행 안 질리고 오래 짙게 바라보는 일엔 진짜 자신 있다. 그러니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다면 말하는 게 좋다고. 말을 도저히 못 하겠을 땐 동일한 기호를 오래오래 보여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언젠가는 읽어 낼 거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당신을 아무 평가 없이, 아무 잣대 없이, 아무 추측 없이, 있는 그대로 읽는 건 내가 잘할 수 있고, 무척 즐거워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감추지 말아 줘. 내 곰곰한 시선에 너를 보여줘, 새순이든 싫은 것이든 무엇이든. 그러면 내가 볼게. 그러고 나서 네게 꼭 대답할게. 나도 있는 그대로 꼭 대답할게.

 

 



+ 오늘의 노래
나란 책

 

 

youtu.be/ca4-zrEkx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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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 이런 표정 상태라서 (밑에 그림) 

가게 노래 책에 계속 이 표정 그리고 있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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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뭐가 남기에 충분한 1년 남짓 기간 동안 했던 규방 글방 모임 시절(?)이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묻는다면 물질 형태의 증명 가능한 것을 꺼내 보일 순 없지만.

지금 그 시절(시절이라고 쓰는 거 오래된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쓸 때마다 웃긴ㅋㅋ) 추천받은 책을 읽고 있다. 읽다 보면 문장 어느 쯤에서 그분이 좋아하는 향기같은 게 나서 추천해주신 분 생각이 난다.  몸 한쪽에 글 쓰는 근육이 있을 사람들. 그 근육으로 써낸 글들, 모니터에 뜨던 활자, 들뜬 동시에 적당히 긴장한 표정, 다른 이의 문장을 몇 번 곱씹던 눈을 기억한다. 그리고 써온 서로의 글을 깊게 읽고 나서 정확하게 칭찬하려 애쓰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기억한다. 글은 말과 달라서 그 사람을 글로 읽으면 새겨지는 감각이 든다. 휘발되는 소리의 재질과 달리 글은 눈에 담긴달까. 

각지에서 만난 분들이라, 종종 봬는 분도 있지만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분도 있다.(좀 울적) 그래도 눈 안에 잔뜩 쌓인 글 더미를 떠들다 보면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고밀도로 새겨진 이 무형의 것이 살면서 만나기 어려운 빛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이해하므로.(그러다가도 너무 그리우면 연락해서 더 쓰신 것이 있다면 내놓으라고 구슬리기도 하고, 없다고 하면 좀 쓰시라고 재촉도 하고)  지금은 없어도 과거의 것을 품고 지내는 정도로도 만족감이 차오르니 어느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엄마가 나를 소중하게 꼭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는 것처럼. 그 시절 분명하게 존재했던 무엇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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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 마이마이 시절엔 원하는 트랙으로 넘기기 귀찮아 쭉 들었다. 한 곡 반복 재생, 트랙 넘기기 같은 기능이 있긴 했지만(없는 것도 있고) 실패율이 있었다.(그러게? 두 트랙 넘어가고 그랬음) 돌아가는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고, 불편하니 잘 안 쓰게 됐다. 애초에 세간에는 앨범 쭉 다 듣는 거지 라는 개념이 강하기도 했고, 한 곡만 반복해 들으면 테이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도 한 몫했다. 이런 식으로 카세트테이프는 기계적 기능 보단 화학반응 물질과 닮아있었다. 듣는 방식은 음악 청취에도 영향을 줬다. 들을수록 타이틀 트랙은 옅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트랙에 강한 잔상이 남았다. 이소라 1집 <그냥 이렇게>가 그러한 트랙.

나에게 이소라 1집은 <난 행복해>나 <처음 느낌 그대로>보단 <그냥 이렇게>가 우선으로 일으켜진다. 그냥 이렇게를 들으려고 테이프를 틀고, 테이프를 틀으면 그냥 이렇게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는 그런 상태. 체념 가득 찬 여름밤 같은 분위기가 좋다. 여름밤은 열띠고 유연하고 경계가 녹아내려 끈적한 것인데, 이 노래는 건조하고 경계선이 날 서있고 열띰이 있다가 금세 식는 불안이 있다. 그런데 뉘앙스가 여름이잖아? 듣다 보면 오묘하게 그어진 금 위를 걷는 기분이 된다. 다 듣고 나면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가서 익숙하지 않은 곳에 도착한 모습이 된다.(5번 트랙 <더위>도 좋아하지만, 분명한 여름 낮이라 다 듣고나도 분명한 여름 낮)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이렇게가 아픔에 도착하게 한 적은 오늘이 처음이라서. 오늘 듣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제야 이 노래가 어디로 가는 건지 아는 건가. 이제야 들리는 건가. 그러고 있어서 쓴다. 흑흑. 썅썅바....

 

 

 

 

 

이소라 <그냥 이렇게>

나의 맘 모두 준다 해도
우린 다시 그 자린 걸

 

youtu.be/gtSv56 LXy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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