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픕니다.

블로그 이미지
암헝그리

Article Category

오늘 (302)
oh ↑ (66)
늘 → (236)
가방 (0)

Recent Post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1. 2021.02.09
    20210209 공놀이

 

 

 

 

 

 

 

 

 

 

 

확실히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이 글을 읽고 나니 미처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축구, 배구, 배드민턴, 농구, 핸드볼 같은 체육시간에 했던 운동은 분명 이 전보다 종목과 친해진 기분이 들고, 좋아하는 구석이 생겼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허공에 대고 바람 역방향으로 배드민턴 공을 치면 배드민턴 공이 다시 내게 날아왔다. 그걸 받아치면서 혼자 배드민턴 치는 걸 좋아했다. 지금에 와서는 혼자라고 썼지만 당시엔 웃기게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상대는 바람, 하늘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여고생적 모먼트. 배드민턴 치는 체육 시간에 바람이 쎄면 기분이 벌써 짜릿했다. 친구가 같이 배드민턴 칠래 해두, 야 휴양대 가서 수다나 떨자 해두 바람에 대고 배드민턴을 쳤다. 정말 사랑하던 순간. 배구나 농구는 수업이 경기까지 이어진 적은 없지만 체육 쌤이 몇 가지 규칙과 동작을 알려주고 연습하라고 애들 버려두는 시간이 좋았다. 혼자 이리저리 연구하면서 해볼 수 있으니까. 배구공 토스하는 동작을 하려면 팔을 쫙 펴고 모아 맞잡은 두 손 엄지 부분을 평평하게 해서 배구공을 잘 닿게 해 튕겨내야 한다. 체육 시간에 해 본 걸로도 배구공이 손에 잘 맞을 때 나는 공소리 탕-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연습 중엔 그 소리가 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이따금 배구 경기를 보면 선수들 손에 닿는 공의 촉감, 토스할 때 엄지 손가락들이 받을 압이 느껴진다. 몇 가지 요소 정도는 나와도 친하던 시절이 있던 것이라는 듯, 여행으로 가봤던 이국의 동네가 티비에 나와서 회상에 빠져버린 것처럼 배구 중계에서 운동장 흙냄새, 흙냄새랑 섞여 나던 배구공 낡은 천 냄새를 맡는다. 바닥에 공을 튀겨가며 걷다가 멈춰 서서 슛을 쏘는 농구의 연결 동작도 좋아했다. 좀 간지가 난다고 생각했던 듯. 농구공 고무 냄새, 특유의 팅팅 농구 공소리가 퍼지는 강당에서 공 튀기기와 슛 연습을 열심히 했다. 아마 고2 2학기였던 것 같다. 쌤은 수능 얼마 안 남았으니 연습 쫌만 하고 쉴 사람들은 쉬라고 했는데, 나랑 몇 안 되는 애들은 열심히 연습했다. 당시엔 연습하면서도 나 왜 열심히 하지? 내가 좀 성실한 타입인가?라고 언뜻 생각하고 말았지만 분명히 좋아했던 것 같다, 공을 만지고 동작하는 일을. 연습을 애들보다 많이 해서 슛 쏘는 걸로 본 실기 점수는 잘 맞았는데, 자세가 너무 웃기다며(몸치의 숙명...) 쌤이 도저히 자세 점수 A+은 줄 수 없다고 인정? 하셔서 네.. 인정... 했던 기억도 재밌고, 핸드볼을 간단하게 익히고서 쌤이 해보자 해서 했던 경기도 재밌었다.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공을 강하게 쥐고 격하게 뛰는 그만큼 흐름이 빠른 경기를 살면서 처음 해본 듯. 역시 짜릿함이 있었다. 핸드볼은 경기 규칙이 쉬워서 이걸 배우던 학년은 체육 대회 때 핸드볼을 했는데, 우리 반이 그 해에 우승을 했다. 그때 나도 뛰었고, 큰 활약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숨찬 가슴을 안고 애들과 부둥켜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이 자주 했던 피구나 발야구는 한 번도 좋아지지 않았다. 좋아한 일말의 구석도 없다. 이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저 글을 읽고 이제야 비로소 뭔가를 알 것 같았다. 피구나 발야구 경기에서 나는 구멍이었고, 누구보다도 빨리 아웃을 당했다. 경기에 도움이 안 되는 선수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내게 닿던 공에서 두려움을 받았다. 이번엔 잘 피해야 할 텐데, 잘 차야 할 텐데 라고 생각했고 번번이 실패했고 쭈글 해졌다. 그런 경험만 하다가 초5 4교시 때 축구를 했는데, 쌤이 여자애들 남자애들 섞어서 편을 짜줬다. 공을 따라 달리고, 내게 오는 공을 근처 친구에게 패스해주는 게 무척 재밌었다. 골도 한 번 넣어 봤던 것 같다. 나한테 공이 몇 번 오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데 재밌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축구 더 하다 들어갈 사람 남아라~ 했을 때 남았고, 수업 끝나고 축구하다 갈 사람 남아라~ 할 때도 남았다. 낄 수 있는 한 꼈다. 그치만 초6 때는 애들이 안 껴줬고 나도 내 하찮은 실력을 알았으므로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며 공과 멀어졌지만 간간히 체육시간에 수업으로라도 공이라는 걸 만나면 너무 좋아 잔뜩 만지다가 헤어졌다. 체육 쌤이 수업 끝날 때 창고에 공 넣어놓고 들어가라 그러면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흩뿌려진 공을 주워 담고 들어 가던 것도 나였는데 나는 내가 심성이 착해서 그러고 있는 줄 알았지, 지금 생각해보니 공을 만지는 게 마냥 좋았는지도.

 

피구나 발야구가 어린이 세계에나 있고 왜 올림픽 종목에는 없는지 이유를 지어보자면, 두려움을 전해서, 낙오되기는 쉽고 승자는 소수 뿐인 이 종목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어서 아닐까.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이 썩을 사회가 피구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사랑 가능??? 내게 다른 공놀이가 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늘 → >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226 정월 대보름이면 달이 다섯 군데 뜨는 강릉  (0) 2021.02.27
20210222 이동  (0) 2021.02.23
20210207 종합 제리  (0) 2021.02.07
20210119 싱숭생숭  (0) 2021.01.20
20210105 그리지 못했지만 축하해!  (0) 2021.01.05
and